모세는 믿는 이였습니다. 당장 거머쥘 수 있는 결실보다 이루어질 희망을 품고 그 약속을 하는 분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을 '아담'의 하느님이라고 하지 않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 세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구원의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약속은 괴로움의 현재를 바탕으로 주어집니다. 괴로움이 없으면 약속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시련이 있습니다. 바로 그 시련을 바탕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게 됩니다. 현세에만 희망을 두는 이, 즉 현세의 삶을 조금 더 낫게 살기만을 바라는 이는 정말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가 힘들 것이며 얻더라도 또 잃어버릴 운명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없다가 있음을 선물받은 이들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 분의 존재를 알고 살아가는 이와 이 분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이의 삶은 천지차이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찾는 사람은 악을 물리치고 선을 쫓아가는 사람입니다. 반면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은 과연 어디에서 선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에게 남은 선이라고는 자신이 느끼기에 좋은 것 뿐입니다. 그래서 돈이 선이 되고 세상의 야욕을 뒤쫓는 것이 선이 됩니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진정 하느님의 뜻에 맞게 길러지기를 바라기보다 '성공'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성공의 문턱은 너무나 높아서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분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포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 신앙인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모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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