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자신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말을 한다고 생각 중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세분에게 초막을 지어 주겠다고 합니다. 인간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좋은 게 있으면 일단 내 소유로 만들어 두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쌓여 있는 욕구가 너무 많아서 그걸 쏟아놓기 바쁩니다. 사실 우리는 타인의 말도 잘 듣지 않습니다. 그저 타인이 말하도록 잠시 허락할 뿐, 결국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안에 고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 드문 일이 되었습니다. 다들 누군가가 이미 한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말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남들이 다 가듯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벌어서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정도로 살고 있을 뿐일까요? 도대체 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추구하는 신앙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 그리고 거기에 가 닿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살아갈까요? 아니면 늘상 신앙은 뭔가 나에게 요구하는 게 많고 나는 그걸 다하지 못해서 불안해 하면서도 혹시 몰라서 신앙에 붙어 있는 것 뿐일까요?
우리가 예수님의 말에 귀 기울일 때에 비로소 나 자신도 올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진정한 창조주로서 인간을 가장 원래의 모습으로 완성시키고자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에, 그분이 선택하신 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에 비로소 가장 스스로다운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서에서 말합니다.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성당에 나오지만 십자가는 싫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자신의 배를 불려 줄 수 있는 주인이 있다면 기꺼이 그에게 내가 가진 영혼의 자유도 내던져 버릴 각오로 사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멸망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냥 듣고 흘리는 게 아니라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새겨 듣고 실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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