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첫 시작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우리 역시도 비슷하게 시작합니다. 우리의 존재감은 미미하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은 성장을 하게 됩니다. 비록 이방인의 서러운 삶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성장을 하고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으로 자라납니다. 우리 역시도 이런 저런 고된 일을 겪지만 결국 사회 안에서 저마다의 위치를 차지하고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커짐에 따라서 그를 괴롭히는 이들의 학대가 심해집니다. 우리도 어릴 때는 겪을 필요가 없던 여러가지 고생이 어른이 되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제서야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무언가가 굉장히 아쉽고 힘들 때에 본격적으로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들을 구해 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하느님은 우리를 들으시고 구해 주실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을 선물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느님께 부르짖고 그분을 찾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져오는 예물은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고 따라서 '감사'가 기본에 깔려 있습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에 대한 '경배'가 바탕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예물을 바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어떠한 것들이 깔려 있을까요? 한 사람의 봉헌 행위는 그 내면에 어떤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닐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미사는 진정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경배드리고 그분께 감사드리는 거룩한 행위일까요? 아니면 혹시 모르는 재난에 대비해서 보험회사랑 계약하듯이 드리는 최소한의 계약행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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