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뭔가를 쥐고 있으면 그것 뿐입니다. 그 손으로는 더는 다른 것을 쥘 수는 없습니다. 다른 것을 쥐려면 '놓을 줄'을 알아야 합니다. 놓고 나면 다른 것이 내 손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을 쥐려면 또 놓으면 됩니다. 그래서 놓을 줄 알아야 수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을 지닙니다. 그리고 그 가족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앙인이 되면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아버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바로 영원하신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영원한 아버지를 올바로 받아들이려면 현세의 아버지를 적절히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아버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로 이어진 형제 자매에게 얽매여 버리면 나는 더는 형제 자매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앙 안에서 참된 영혼의 피로 이어진 형제 자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현세의 형제 자매를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집과 토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영역에만 집착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물론 그마저도 내가 온전히 지닐 수 없어 결국 선산에 묻히는 것 정도가 최고이겠지요. 고작해야 한 평 땅에 썩어가는 내 육신을 묻고 끝나 버립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수십년이 지나고 나면 잊혀지고 파헤쳐지고 말겠지요. 참된 땅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라고 불리는 땅입니다. 그래서 그 땅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현세의 땅에 대한 집착을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개인적으로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여러 번 놓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저는 제 출신 본당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여러군데입니다. 유년 시절을 보낸 성당은 신평성당이고, 처음 신학교에 들어간 성당은 김대건 성당이며, 정작 신부가 된 본당은 성서 성당입니다. 저는 구미가 고향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저는 대구 신암동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그리워하는 고향은 대구도 구미도 아닌 남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내려 놓아야 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이끌어 가려는 곳은 이 지상의 어디도 아닌 셈입니다. 그곳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곳을 위해서 하느님은 저에게 '내려 놓는 법'을 꾸준히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할 것은 고집피우지 않는 것입니다. 내려 놓으라 할 때에 과감하게 내려 놓으면 그 뿐입니다. 그런 아버지를 철저히 믿고 의지하는 철부지와 같은 이들에게 하늘 나라의 숨겨진 신비가 선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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