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하면 그리스도가 탄생한 듯이 어느 부유한 집안의 못된 아기가 태어나서 사탄 그 자체가 되어 그리스도에 맞서는 무슨 판타지 소설 같은 것을 연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것은 그런 영화 속의 이미지 같은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은 그리스도가 이루시려는 것에 맞서는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이루시려고 하셨을까요? 여러가지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셨고, 사랑을 이루려고 하셨고,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되고 진정으로 서로를 아끼고 행복해하는 것을 궁극적으로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적은 이 모든 것에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유다 사도가 예수님 앞에 물은 것처럼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묻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성전 안에 머물러 있다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사 생활을 꼬박꼬박 챙겨 한다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찾아오는 이유를 알아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성사 생활을 한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 즉 신앙을 실제로 사는 이들이 되어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리스도가 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그리스도의 뜻을 어긋나기까지 나의 뜻을 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더러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라고 한 게 아닙니다. 그걸 흉내내라고 단식이나 몇 번 하라고 한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기본적인 것이 있을 때에 가난한 이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의 단식은 철두철미하게 지키려고 하면서 그보다 더 소중한 자선과 사랑의 행업은 쉽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교회 내에서 성인 행새를 하는 그리스도의 적들이 존재하니 사람들은 그들이 회칠한 무덤인지도 모르고 밟고 지나다닙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짐짓 거룩한 척, 하느님을 사랑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은 이미 존재합니다. 그들은 사실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이입니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척을 할 뿐입니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자신이 사랑받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타인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들이 바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적은 어느 멋들어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잠복하는 사자처럼 자신을 은밀히 감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것은 그런 영화 속의 이미지 같은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은 그리스도가 이루시려는 것에 맞서는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이루시려고 하셨을까요? 여러가지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셨고, 사랑을 이루려고 하셨고,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되고 진정으로 서로를 아끼고 행복해하는 것을 궁극적으로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적은 이 모든 것에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유다 사도가 예수님 앞에 물은 것처럼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묻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성전 안에 머물러 있다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사 생활을 꼬박꼬박 챙겨 한다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찾아오는 이유를 알아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성사 생활을 한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 즉 신앙을 실제로 사는 이들이 되어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리스도가 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그리스도의 뜻을 어긋나기까지 나의 뜻을 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더러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라고 한 게 아닙니다. 그걸 흉내내라고 단식이나 몇 번 하라고 한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기본적인 것이 있을 때에 가난한 이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의 단식은 철두철미하게 지키려고 하면서 그보다 더 소중한 자선과 사랑의 행업은 쉽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교회 내에서 성인 행새를 하는 그리스도의 적들이 존재하니 사람들은 그들이 회칠한 무덤인지도 모르고 밟고 지나다닙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짐짓 거룩한 척, 하느님을 사랑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은 이미 존재합니다. 그들은 사실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이입니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척을 할 뿐입니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자신이 사랑받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타인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들이 바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적은 어느 멋들어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잠복하는 사자처럼 자신을 은밀히 감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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