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알려진 일들보다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사람은 인생의 지혜 하나를 배우게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이라는 것, 보이지 않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리이지요.
웃는 이의 미소 뒤에는 슬픈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거룩한 척 가식적인 얼굴 뒤에 어리석음과 음흉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더욱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피상적인 세상에서 사는 이들은 피상적인 것들을 받아들이고 삽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천부적인 순수함이 유지되지만 결국 그 순수함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인간 존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늘이 마련한 그 순수함이 깨어지고 나면 사람은 세상과의 만남을 시작하게 되고 그 뒤에 깨어난 자신의 자유의식과 더불어 나아갈 길을 정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커 보이던 어른들이 초라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삶의 굴레에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비로소 우리 각자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여전히 그 피상적인 삶의 수준을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적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이가 도리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고, 극도의 피상적인 삶을 사는 이가 엄청나게 화려해 보일 수 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피상의 세계를 탐내고 진리의 세계를 잊어가는 것이지요.
한때는 많이 아파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하느님은 저마다에게 같은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 기회는 세상 안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기회는 아닙니다. 그 기회는 ‘영원’을 향한 기회이지요. 그리고 각자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똑같은 그 ‘영원’의 기회를 받고 응답한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안타까워할 이유도 실은 별로 없는 것입니다. 저마다의 선택의 결과이니까요. 똑같이 받은 걸 그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바로 그 자신의 선택으로 말이지요. 아직은 제 심장이 살심장이라 그런 이들을 마주하면 안타까울 수 밖에 없고 더 많은 사랑을 쏟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런 이들은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말 것입니다. 스스로가 한 행동과 말로 스스로에게 고립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오직 지금이 기회일 뿐입니다. 지금만이 우리의 말을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고, 우리로서는 선업을 쌓을 더 많은 기회를 얻는 셈이지요. 그래서 오늘도 부단히 말하고 또 말합니다. 귀 있는 자들은 들을 것입니다. 귀 있는 자들 말이지요.
웃는 이의 미소 뒤에는 슬픈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거룩한 척 가식적인 얼굴 뒤에 어리석음과 음흉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더욱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피상적인 세상에서 사는 이들은 피상적인 것들을 받아들이고 삽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천부적인 순수함이 유지되지만 결국 그 순수함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인간 존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늘이 마련한 그 순수함이 깨어지고 나면 사람은 세상과의 만남을 시작하게 되고 그 뒤에 깨어난 자신의 자유의식과 더불어 나아갈 길을 정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커 보이던 어른들이 초라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삶의 굴레에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비로소 우리 각자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여전히 그 피상적인 삶의 수준을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적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이가 도리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고, 극도의 피상적인 삶을 사는 이가 엄청나게 화려해 보일 수 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피상의 세계를 탐내고 진리의 세계를 잊어가는 것이지요.
한때는 많이 아파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하느님은 저마다에게 같은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 기회는 세상 안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기회는 아닙니다. 그 기회는 ‘영원’을 향한 기회이지요. 그리고 각자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똑같은 그 ‘영원’의 기회를 받고 응답한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안타까워할 이유도 실은 별로 없는 것입니다. 저마다의 선택의 결과이니까요. 똑같이 받은 걸 그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바로 그 자신의 선택으로 말이지요. 아직은 제 심장이 살심장이라 그런 이들을 마주하면 안타까울 수 밖에 없고 더 많은 사랑을 쏟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런 이들은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말 것입니다. 스스로가 한 행동과 말로 스스로에게 고립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오직 지금이 기회일 뿐입니다. 지금만이 우리의 말을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고, 우리로서는 선업을 쌓을 더 많은 기회를 얻는 셈이지요. 그래서 오늘도 부단히 말하고 또 말합니다. 귀 있는 자들은 들을 것입니다. 귀 있는 자들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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