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제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될 것이오!”
과연 이게 복음이 의도하는 기쁜 소식일까요? 그럼 얼마나 벌어야 많이 버는 것일까요? 그 가난한 이가 바라보던 부자보다 훨씬 많이 벌면 되는 것일까요? 그럼 그 부자가 다시 가난한 이가 되어 상황이 역전되어 버리기만 하는 건 아닐까요?
과연 가난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누구를 가난하다고 하는 것일까요? 복음에서 말하는 ‘가난’은 과연 무엇일까요?
가난은 자신의 현재의 초라함을 아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을 간절히 기다리는 상태를 말하지요. 통상적으로는 ‘물질’ 차원에서 가난을 이야기합니다. 돈이 없어 삼시 세끼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이들, 몸 하나 누일 곳이 없는 이들, 옷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해 헐벗은 이들을 가난하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진정한 가난은 물질 소유의 여부를 벗어나 확장된 개념입니다. 우리는 사실 모두 가난한 이들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선’이 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는 ‘선하다는 것’을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선의 근원이시고 샘이신 하느님이 늘 필요하지요. 하지만 때로 사람들 중에는 하느님 없이도 잘 사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물론 그들의 착각일 뿐이지만 말이지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은 단순히 재산의 증식이 아닙니다. 진정한 기쁜 소식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느님이 여러분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영원한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당신 외아들을 보내어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고 여러분에게 영원한 기쁨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하십시오!”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바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어야 합니다. 다른 기쁜 소식은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대형 교회에서 세속적인 성공을 약속하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위는 ‘기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물질이라는 것은 이웃을 더욱 사랑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것으로 다른 더 많은 이웃들을 도와 상급을 얻을 것이고, 적게 가진 그리스도인은 적게 가진 대로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시간을 투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상급을 오로지 돈으로만 취급하는 이들은 장사꾼이며 거짓말쟁이들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은 반드시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할 사명은 우리 신앙인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고 어디서고 우리의 영원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연 이게 복음이 의도하는 기쁜 소식일까요? 그럼 얼마나 벌어야 많이 버는 것일까요? 그 가난한 이가 바라보던 부자보다 훨씬 많이 벌면 되는 것일까요? 그럼 그 부자가 다시 가난한 이가 되어 상황이 역전되어 버리기만 하는 건 아닐까요?
과연 가난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누구를 가난하다고 하는 것일까요? 복음에서 말하는 ‘가난’은 과연 무엇일까요?
가난은 자신의 현재의 초라함을 아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을 간절히 기다리는 상태를 말하지요. 통상적으로는 ‘물질’ 차원에서 가난을 이야기합니다. 돈이 없어 삼시 세끼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이들, 몸 하나 누일 곳이 없는 이들, 옷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해 헐벗은 이들을 가난하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진정한 가난은 물질 소유의 여부를 벗어나 확장된 개념입니다. 우리는 사실 모두 가난한 이들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선’이 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는 ‘선하다는 것’을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선의 근원이시고 샘이신 하느님이 늘 필요하지요. 하지만 때로 사람들 중에는 하느님 없이도 잘 사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물론 그들의 착각일 뿐이지만 말이지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은 단순히 재산의 증식이 아닙니다. 진정한 기쁜 소식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느님이 여러분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영원한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당신 외아들을 보내어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고 여러분에게 영원한 기쁨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하십시오!”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바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어야 합니다. 다른 기쁜 소식은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대형 교회에서 세속적인 성공을 약속하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위는 ‘기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물질이라는 것은 이웃을 더욱 사랑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것으로 다른 더 많은 이웃들을 도와 상급을 얻을 것이고, 적게 가진 그리스도인은 적게 가진 대로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시간을 투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상급을 오로지 돈으로만 취급하는 이들은 장사꾼이며 거짓말쟁이들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은 반드시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할 사명은 우리 신앙인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고 어디서고 우리의 영원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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