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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추수

저는 말씀의 씨를 뿌립니다. 하지만 그 씨앗을 키우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아무도 모르게 그 싹을 틔우십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결과물들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때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오늘 아침에는 운동을 다녀와서 커피를 한 잔 타 마시면서 식관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에는 안부를 물었지요.

- 지난 번 수술한 데는 좀 괜찮아요?
- 네, 신부님.
- 하나 가르쳐 줄까요? 돈에는 더러운 돈이 있고 깨끗한 돈이 있어요. 더러운 돈은 이기심과 죄악으로 더럽혀진 돈이고 깨끗한 돈은 자발적인 봉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러운 돈을 아무리 쏟아부어 보아야 치료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해요. 오직 깨끗한 돈만이 치유를 돕지요. 지난 번 수술이 잘 된 이유는 바로 거기 있어요.

그러자 이 자매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신부님, 지난 주일 강론은 정말 잘 들었어요. 꼭 필요한 이야기였어요. (지난 강론에 가정 폭력에 대해서 현실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사실 지난 토요일에도 집에서는 제 남편과 시동생의 술판이 벌어졌지요. 헌데 이웃집의 꼬마가 우리집에 찾아온 거예요. 그러면서 나에게 다가와서 아빠가 엄마를 때린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얼른 그 집으로 쫓아갔지요. 제 남편과 시동생도 말리려고 따라 왔구요. 가는 도중에 그 자매를 만났고 우리는 모두 그 집으로 갔어요. 그리고 저는 천천히 그 형제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잘 생각해 보라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라서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느냐고 말이지요. 그러니 그 아저씨는 멋적은 듯이 수긍을 하더군요. 그리고는 다시 주일에 만나서 혼인 갱신식에 신청 했노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그러자 화들짝 놀라더니 그게 뭐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혼인을 다시 확고히 하는 거라고 했더니, 정말 신청해 버렸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했다고 하니 그럼 어쩔 수 없다며 미사 시간이 몇 시냐고 물었어요.

- 참 잘했어요. 그게 바로 선교이고 복음화이지요. 복음화라는 게 반드시 성경을 들고가서 줄구장창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진정 올바른 길을 걷도록 도와주는 게 복음화예요. 정말 잘했어요. 쉽지 않은 일이지요.

- 네, 신부님. 정말 쉽지 않아요.

- 맞아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쉽지 않기에 가치가 있는거죠. 쉬우면 누군들 못하겠어요. 안그래요?

그렇게 웃으면서 저는 다시 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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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를 모시는 방법

- 성체를 손으로 모시는 게 신성모독이라는데 사실인가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일단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체를 입으로 직접 받아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수난 만찬때에 제자들과 모여 함께 나눈 빵을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입만 벌리고 받아 모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손으로 빵을 받아서 나누어 옆의 동료들에게 나누어가며 먹었습니다. 하지만 성체에 대한 공경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감에 따라 부스러기 하나라도 흘리지 않으려는 극진한 공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제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고 받아모시게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신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또 입으로 모시다가 자꾸 사제의 손에 침이 발리니 위생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손으로 받아 모시게 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과 같은 곳은 입으로 받아 모시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전부가 손으로 받아 모십니다. - 그럼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건가요? - 제가 보았을 때에는 성체에 대한 극진한 존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체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손으로 모시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할 필요는 없지요. 여기서는(볼리비아에서는) 입으로 모시는 사람과 손으로 모시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고 둘 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모시는 이들의 혀가 제 손에 자꾸만 닿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이는 굉장히 비위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모시는 것이 성체를 흘리고 떨어뜨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모시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지요. 다만 손으로 모실 때에는 미사 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왼손 아래에 오른손을 받치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왼손으로 성체를 받아 뒤의 사람이 앞으로 나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나서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손에 남은 부스러기를 함부로 다루지 말고 입으로 가져가서 혓바닥으로 깨끗이 처리할 필요가 있지요

신부님이랑 목사님은 뭐가 달라요?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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