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에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표현은 마치 아무런 죄가 없는 이에게 악한 마음을 심어 주어 그가 악행을 저지르도록 하느님이 만들었다는 표현 같이 들립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절대로 누군가를 죄짓게 만들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런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강론대에서 사람들에게 보다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말하곤 합니다. 즉 술을 과하게 먹지 말라거나, 아내를 때리지 말라는 내용을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입니다. 술을 마시는 아빠를 두고 거기에 너무 시달려서 제 강론을 듣고 힘을 얻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술을 먹고 객기를 부린 것으로 인해서 가족의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그것을 마음 아파 하는 중에 제 강론을 듣고는 뉘우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술을 너무나 사랑하고 자신의 어두운 삶을 너무나 사랑해서 제 강론을 듣고는 오히려 반대로 저에게 적개심을 품는 사람도 있는 셈이지요.
술을 과하게 마시지 말라는 강론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전달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의 내면에 따라서 전혀 다른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파라오에게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동정심’이라던가 ‘선함’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더라면 이스라엘의 탈출 사건은 다른 황제를 통해서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파라오에게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고 바로 신앙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는 단순히 성경 안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우리 가운데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느 신앙인 앞에 참된 길을 향한 방향이 주어지면 그 신앙인은 그것을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이 사건이 엄청난 사건으로 묘사되지만 우리는 일상 안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 형식으로 매번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잘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합니다.’ 진실하고 참되고 고귀하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합니다.’ 가난한 이들 앞에서 돈을 움켜쥐고, 나의 악습을 알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고,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기보다는 세상의 힘에 기대려고 하고, 탐욕이 가득한 자신의 마음을 느끼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명예와 권력을 사랑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완고하게 하는 것이지요. 파라오는 왕이었으니 그 완고한 마음을 왕의 자리에서 실행한 것 뿐이고,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그 완고한 마음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역사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여러가지 좋은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은 파라오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을 뿐입니다. 그 빛을 받고 마음을 완고하게 한 주체는 바로 파라오 자신이었던 것이지요.
이런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강론대에서 사람들에게 보다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말하곤 합니다. 즉 술을 과하게 먹지 말라거나, 아내를 때리지 말라는 내용을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입니다. 술을 마시는 아빠를 두고 거기에 너무 시달려서 제 강론을 듣고 힘을 얻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술을 먹고 객기를 부린 것으로 인해서 가족의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그것을 마음 아파 하는 중에 제 강론을 듣고는 뉘우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술을 너무나 사랑하고 자신의 어두운 삶을 너무나 사랑해서 제 강론을 듣고는 오히려 반대로 저에게 적개심을 품는 사람도 있는 셈이지요.
술을 과하게 마시지 말라는 강론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전달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의 내면에 따라서 전혀 다른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파라오에게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동정심’이라던가 ‘선함’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더라면 이스라엘의 탈출 사건은 다른 황제를 통해서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파라오에게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고 바로 신앙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는 단순히 성경 안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우리 가운데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느 신앙인 앞에 참된 길을 향한 방향이 주어지면 그 신앙인은 그것을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이 사건이 엄청난 사건으로 묘사되지만 우리는 일상 안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 형식으로 매번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잘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합니다.’ 진실하고 참되고 고귀하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합니다.’ 가난한 이들 앞에서 돈을 움켜쥐고, 나의 악습을 알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고,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기보다는 세상의 힘에 기대려고 하고, 탐욕이 가득한 자신의 마음을 느끼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명예와 권력을 사랑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완고하게 하는 것이지요. 파라오는 왕이었으니 그 완고한 마음을 왕의 자리에서 실행한 것 뿐이고,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그 완고한 마음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역사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여러가지 좋은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은 파라오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을 뿐입니다. 그 빛을 받고 마음을 완고하게 한 주체는 바로 파라오 자신이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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