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서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마치게 됩니다. 지금은 이곳 시간으로 새벽 1시 40분이네요. 참으로 많은 곳을 돌아 보았습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 두었으니 원하면 언제라도 다시 꺼내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순례를 통해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 마음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성지는 절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상상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지는 ‘사람 사는 분주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귀하다는 성지일수록 더욱더 사람들이 가득 들어 차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지를 돌아다니면서 가이드를 하신 신부님이 열심히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물론 다 듣지 못했고 설령 들었다 해도 다 기억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모르고 살아도 별로 상관 없는 내용들이기도 했습니다. 근 37년을 모르고 살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니 앞으로도 모르고 지내도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성지에 대한 지식 거리 하나가 늘고 주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성지에 대해서 알아야만 할 것은 이미 성경 구절들에 다 나와 있었습니다. 가장 사랑한 도성의 엇나감, 사람의 아들의 행보와 같은 핵심적인 내용들은 신약성경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한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미 그 누구보다도 성지를 살고 있었고 주님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성지에서 실제로 생활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지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해서 무지한 이들, 그분이 살아 숨쉰 곳 가장 가까이 머무르면서도 그것을 호흡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따라가는 이들이었지요.
저는 10년차를 맞이한 동기 신부님들과 함께 머무르는 것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동기 신부님들과 함께 거룩한 곳을 거닐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의의를 두었지요. 그리고 성지에 모여드는 신앙인들의 염원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그야말로 ‘관광’이 아닌 ‘순례’를 오는 이들이 뜻을 모으고 마음을 모은 거룩한 장소들에서 하느님께로 또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게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 자리가 실제로 그 자리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그 순례지에 수많은 이들이 와서 기도를 하고 거룩한 은총을 체험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요.
하혈하는 여인이 만진 것은 예수님의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망토였지요. 그리고 사실 그녀가 만질 수 있었던 것은 ‘손’ 때문이 아닙니다.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성지에서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먼거리를 걸어온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오늘날의 수많은 관광객들은 그 어떤 희생도 노력도 없이 성지를 찾아오고 그야말로 ‘관광’을 하고 갑니다. 여느 다른 유적지에 가더라도 했을 똑같은 일을 거룩한 땅에서도 반복하는 것이지요.
성지는 수많은 분쟁의 중심에 놓여 있었고, 수많은 이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곳이었습니다. 이제 한 번 왔으니 다시 올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합니다. 주님은 수난하시고 돌아가시고 묻히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매 미사 때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둘이나 셋 이상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늘 함께 하고 계십니다. 바로 우리가 성지입니다. 거룩한 영을 모신 우리의 몸이 성전이고 그 성전이 모인 우리가 바로 성지입니다. 이것이 제가 성지를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명백한 사실입니다.
성지는 절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상상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지는 ‘사람 사는 분주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귀하다는 성지일수록 더욱더 사람들이 가득 들어 차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지를 돌아다니면서 가이드를 하신 신부님이 열심히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물론 다 듣지 못했고 설령 들었다 해도 다 기억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모르고 살아도 별로 상관 없는 내용들이기도 했습니다. 근 37년을 모르고 살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니 앞으로도 모르고 지내도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성지에 대한 지식 거리 하나가 늘고 주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성지에 대해서 알아야만 할 것은 이미 성경 구절들에 다 나와 있었습니다. 가장 사랑한 도성의 엇나감, 사람의 아들의 행보와 같은 핵심적인 내용들은 신약성경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한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미 그 누구보다도 성지를 살고 있었고 주님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성지에서 실제로 생활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지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해서 무지한 이들, 그분이 살아 숨쉰 곳 가장 가까이 머무르면서도 그것을 호흡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따라가는 이들이었지요.
저는 10년차를 맞이한 동기 신부님들과 함께 머무르는 것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동기 신부님들과 함께 거룩한 곳을 거닐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의의를 두었지요. 그리고 성지에 모여드는 신앙인들의 염원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그야말로 ‘관광’이 아닌 ‘순례’를 오는 이들이 뜻을 모으고 마음을 모은 거룩한 장소들에서 하느님께로 또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게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 자리가 실제로 그 자리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그 순례지에 수많은 이들이 와서 기도를 하고 거룩한 은총을 체험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요.
하혈하는 여인이 만진 것은 예수님의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망토였지요. 그리고 사실 그녀가 만질 수 있었던 것은 ‘손’ 때문이 아닙니다.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성지에서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먼거리를 걸어온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오늘날의 수많은 관광객들은 그 어떤 희생도 노력도 없이 성지를 찾아오고 그야말로 ‘관광’을 하고 갑니다. 여느 다른 유적지에 가더라도 했을 똑같은 일을 거룩한 땅에서도 반복하는 것이지요.
성지는 수많은 분쟁의 중심에 놓여 있었고, 수많은 이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곳이었습니다. 이제 한 번 왔으니 다시 올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합니다. 주님은 수난하시고 돌아가시고 묻히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매 미사 때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둘이나 셋 이상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늘 함께 하고 계십니다. 바로 우리가 성지입니다. 거룩한 영을 모신 우리의 몸이 성전이고 그 성전이 모인 우리가 바로 성지입니다. 이것이 제가 성지를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명백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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