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요한 20,17)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든다는 말은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붙들 수 있는 것, 예수님을 한 자리에 머무르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이지요.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한한 사랑을 통해서 예수님을 붙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가셔야 했지요. 이 역시 공간의 이동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가신다는 말은 그분의 사랑에 하나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헌데 마리아의 사랑, 인간의 소소한 사랑이 무한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친절하십니다. 마리아의 사랑을 무시하시는 게 아니라 부탁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 선택해서 그분이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있게 놓아주도록 이끌어 주시고 도와 주십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온유하고 친절하며 따스한지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든다는 말은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붙들 수 있는 것, 예수님을 한 자리에 머무르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이지요.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한한 사랑을 통해서 예수님을 붙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가셔야 했지요. 이 역시 공간의 이동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가신다는 말은 그분의 사랑에 하나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헌데 마리아의 사랑, 인간의 소소한 사랑이 무한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친절하십니다. 마리아의 사랑을 무시하시는 게 아니라 부탁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 선택해서 그분이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있게 놓아주도록 이끌어 주시고 도와 주십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온유하고 친절하며 따스한지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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