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현세의 삶을 유지, 혹은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방향을 찾아서 최선을 다하지요. 조금 더 나은 집, 조금 더 멋진 차, 조금 더 맛있는 음식, 조금 더 나은 미모 등등 온갖 현세적인 것들을 생각의 범주에 넣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압니다. 그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러나 그 사실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우리를 주눅들게 만들고 두려워하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죽음은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피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 연장의 꿈이야말로 가장 가치있는 일이 되는 셈이랄까요?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그리고 마르타는 주저없이 ‘예!’ 하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이 나자로와 마르타, 그리고 마리아 가족을 사랑하신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는 셈입니다. 굳은 신뢰가 있는, 그것도 영원에 대한 신뢰가 있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이들입니다. 반면 이를 믿지 못하는 이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하느님의 자녀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약점, 죽음으로 이끄는 약점을 두려워하고 가리려 하고 위선적으로 내비치려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들은 자신이 가진 약점을 도리어 자랑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응답 받을 것을 알고 있지만, 세상의 자녀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서서히 자각해 가는 중입니다.
그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셈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압니다. 그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러나 그 사실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우리를 주눅들게 만들고 두려워하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죽음은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피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 연장의 꿈이야말로 가장 가치있는 일이 되는 셈이랄까요?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그리고 마르타는 주저없이 ‘예!’ 하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이 나자로와 마르타, 그리고 마리아 가족을 사랑하신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는 셈입니다. 굳은 신뢰가 있는, 그것도 영원에 대한 신뢰가 있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이들입니다. 반면 이를 믿지 못하는 이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하느님의 자녀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약점, 죽음으로 이끄는 약점을 두려워하고 가리려 하고 위선적으로 내비치려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들은 자신이 가진 약점을 도리어 자랑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응답 받을 것을 알고 있지만, 세상의 자녀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서서히 자각해 가는 중입니다.
그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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