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여정 중에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 보는 앞에서,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탈출 40,38)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 표징은 구름과 불이었지요. 밝은 낮에는 그 안을 알 수 없는 신비로, 어두운 밤에는 뚜렷한 징표로 드러난 구름과 불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은 이 두가지를 모두 수용해야 합니다. 알 수 없는 신비와 뚜렷한 징표를 모두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을 ‘낱낱이’ 밝히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신앙은 그리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신조가 낱낱이 밝혀지고 모든 하느님의 속성이 낱낱이 밝혀지면 그것은 더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턱대고 가리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어두운 가운데 빛을 비춰 주지 못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정말 힘들고 고된 가운데, 우리의 영적 어두운 밤에 길을 비춰주는 뚜렷한 빛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신비의 영역이 존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드러내는 영역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으로 완전히 치우쳐 버리면 우리는 균형감각을 잃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가르침은 죄인들에게는 뚜렷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 표징은 구름과 불이었지요. 밝은 낮에는 그 안을 알 수 없는 신비로, 어두운 밤에는 뚜렷한 징표로 드러난 구름과 불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은 이 두가지를 모두 수용해야 합니다. 알 수 없는 신비와 뚜렷한 징표를 모두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을 ‘낱낱이’ 밝히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신앙은 그리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신조가 낱낱이 밝혀지고 모든 하느님의 속성이 낱낱이 밝혀지면 그것은 더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턱대고 가리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어두운 가운데 빛을 비춰 주지 못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정말 힘들고 고된 가운데, 우리의 영적 어두운 밤에 길을 비춰주는 뚜렷한 빛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신비의 영역이 존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드러내는 영역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으로 완전히 치우쳐 버리면 우리는 균형감각을 잃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가르침은 죄인들에게는 뚜렷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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