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루카 9,45)
모든 좋은 말들과 글들이 다 먹혀드는 것은 아닙니다. 듣는 사람의 이해력이 열려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도 아무리 좋은 글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주 좋은 술을 준비해서 따라줄테니 받아가라고 하는데 하다못해 비닐봉지라도 들고 와야지 보자기를 들고 오면 술이 술술 빠져 나가는 법이지요.
우리는 주어지는 것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주어지는 가르침에 합당한 자세와 이해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헌데 과연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르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대학교 수업은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마쳐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검정고시라도 통과해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내용도 그 수준이 있게 마련입니다. 무턱대고 좋은 내용이라고 듣고 읽어 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법이지요. 오히려 진정한 가르침을 들으면 제자들의 반응처럼 묻는 것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하느님에게로 이끄는 가르침은 처음에는 솜사탕처럼 다가옵니다. 아주 부드럽고 맛깔스럽고 입에 달지요. 그래서 누구나 순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가게 되면 다음으로는 조금 더 단단한 음식이 나오게 됩니다. 이해를 하는데 힘이 쓰이고 실천하기는 더욱 어려운 가르침들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다가오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이는 첫 단계의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이고 오직 쓴 맛 만이 가득해 보이는 가르침입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바로 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서 예수님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해력이 떨어졌고, 심지어는 그 참된 가르침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기까지 했지요.
저마다의 수준에 맞는 가르침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하느님은 그를 작은 계단부터 시작해서 높은 사다리까지 올려 보내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교만해서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착각하면 우리는 오르던 계단에서 떨어지게 되고 다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할 때에는 엉뚱한 증오를 하느님에게 내뱉기도 하지요.
우리는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신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삶으로 주어지는 현실에 굳은 신뢰를 가지고 묵묵히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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