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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솔라따 인터뷰



마진우 요셉 신부님께

한국 꼰솔라따 선교수도회의 편집장인 포르투갈 출신 정진 마르쿠스 신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마진우 요셉 신부님께 어려운 부탁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꼰솔라따 선교수도회는 격월로 발행하는 잡지를 통하여 한국인의 해외 선교 활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생한 체험을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어 선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소중한 해외 선교 체험을 함께 나눠주시어 선교 활동 발전에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아래의 질문에 답변하시는 형식으로 쓰시거나 자유롭게 써 주셔도 됩니다. 
소중한 시간 허락해주신 마진우 요셉 신부님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영육간의 건강과 교회 발전을 두 손 모아 기도 드리겠습니다.

정진 마르쿠스 신부 드림


다음 내용에 대해 A4 3~4매 내외로 작성하시거나 자유롭게 써주시면 됩니다.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저는 마진우 요셉 신부입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볼리비아 산타 크루즈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선교 사목을 하였고 지금은 고국에 돌아와 사수동에 신설 본당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 사제가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입회한 이후의 생활 등등...) 
사제가 되는 데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다녔고 복사단을 하면서 신부님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 머리가 좀 굵어졌을 때에 성소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어떻게 지금 선교지에 가게 되었는지요? 
사실 처음에는 제가 선교지에 오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제의 삶을 준비해왔고 사제가 되어서도 보좌 신부로 열심히 살았지요. 하지만 2007년도에 볼리비아에 선교 사제를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문득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도에 새로운 본당에 보좌로 발령을 받아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데 교구에서 저를 찾더니 선교에 뜻이 있었지 않느냐며 저를 선교지로 보내었습니다. 그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그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지만 우리에게 가장 사심이 없을 때에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선교지의 첫 인상과 그 나라에 관해 말씀해 주시고, 지금 선교하고 있는 나라 교회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선교지의 첫 인상은 당황스러움이었습니다. 일단 환경적으로 한국과는 상당히 달랐지요. 덥고 습하고 먼지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뺨을 맞대며 입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짜고 단 음식들에 길들어가야 했지요. 결정적으로 언어가 달랐습니다. 사실 이것이 초창기 선교지의 힘든 경험 가운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사람이 위축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극복되어 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보낸다고 극복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직접 부딪혀가면서 모든 것들을 극복했습니다. 환경은 시간이 흐르자 익숙해졌고, 문화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언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의 마지막 즈음에는 오히려 한국말을 까먹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 중에서 핵심은 선교지에 젖어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고 그들의 음식을 들고 그들의 고민을 나누지 않으면 이런 극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선교 생활이 수십년이 지나도 말이 어눌한 사람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한국 음식을 잊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들도 있었지요. 그러는 통에 불만이 자꾸만 쌓여가고 갈수록 선교지에서 골이 깊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선교사는 자신이 머무는 곳의 양의 냄새가 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교한 곳의 과제는 외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공소도 지어줄 수 있고, 학교도 지어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의 선교를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은 선교사에게서 물질적 축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건물을 지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진리에 대해서 가르치고 신앙의 핵심에 대해서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말이 어눌하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드러내는 데에는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선교지의 사람들은 압니다. 한 선교사가 정말 그들과 함께 하려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말이지요. 현지에서 사람들이 선교사를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는데 감사하면서 맛있게 먹지 않고 얼굴을 찌푸리며 먹는 둥 마는 둥 하면 이미 사람들은 아는 것입니다. 비록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이미 다음부터는 그 선교사를 초대하지 않겠지요. 선교지의 과제는 NGO단체가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의 선교사이고 신앙의 선교사입니다. 그 핵심을 잃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초라한 껍데기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구대교구에서는 언제부터 그 선교지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함께 일하고 있는 공동체와 활동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대구대교구는 20여년 전부터 사제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대구교구는 오스트리아의 짤쯔부르크 교구와 자매 결연을 맺고 있었는데 활 교구가 볼리비아 현지 교구와 또한 협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사제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 오자 짤쯔부르크 교구는 그 요청을 우리 교구에 전달했고 우리 교구가 사제를 한 명 보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대구교구와 볼리비아 산타 크루즈 교구가 뚜렷한 협약을 맺고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사제가 파견되고 난 뒤에 이어서 사제들의 파견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제 숫자가 늘어나고 한국 사제가 맡는 공동체도 늘어나기 시작했지요. 현지 교구의 턱없이 부족한 사제들로 인해서 아무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공동체가 있었고 사제들이 임기를 늘리고 다른 본당을 더 맡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볼리비아에서 두 개의 본당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제들의 활동은 기본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사와 성사를 거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한국에서 하는 일과 별반 다를 것은 없는 셈입니다. 다만 그것을 다른 환경과 문화와 언어 안에서 이루어 내어야 하기에 한국과는 다른 특이성을 지닙니다. 볼리비아가 비록 가톨릭 국가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는 없고 거의 세례만 받고 첫영성체와 견진과 같은 주요한 성사만 받을 뿐 그 외에는 주일미사도 제대로 참례하지 않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시기에는 반드시 교회의 도움을 청하지요. 그래서 선교지의 사제는 본연의 미사 외에도 다른 축복식과 가정 방문이 끊이질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특히나 ‘장례’는 사제가 사람들을 복음화 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이의 시신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니까요.

  • 외국에 살면서 어려웠던 일과 재미있었던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어려웠던 일은 참으로 다양하고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아 성당에 나오지 않고 다른 세속적인 욕구를 찾아 나올 때였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거나 진정한 삶의 방향을 찾아서 성당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당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나름으로는 부유한 선교 사제와 친분을 맺기 위해서 성당에 나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언제나 성당 안에서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곤 했지요.

선교 생활 자체는 참으로 보람있고 재미있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내면에 든 것을 만나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렇게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이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서 다시 우리에게 감사를 전할 때에 그만한 보상이 따로 없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아내를 때리던 남편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는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 마음이 갈라져 다른 남자에게 가 있던 아내가 다시 마음을 돌이켜 가족에게 헌신하는 모습, 어둠의 유혹에 빠져 가던 젊은이가 다시 하느님에게로 돌아와 뉘우치는 모습 등은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이런 경험을 통해 느낀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참을성이 없고 욕심이 많을 뿐이지요. 하느님은 가장 좋은 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저 믿고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면 됩니다. 선교사는 특히나 그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선교사는 이미 고국을 떠나 완전히 다른 환경에 자신을 내어 맡기기에 더욱 하느님께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선교사를 하느님은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저는 몇 차례의 죽음의 고비(택시강도, 병환 등등)를 넘겼지만 지나고 나면 그 안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손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당신을 위해 헌신하는 이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그 선교지에는 언제까지 계실 건지요?) 

선교지에서는 이미 나왔습니다. 그리고 쓸개를 떼어 내었지요. 원래대로라면 아직 선교지에 있어야 할 터이지만 하느님은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고 있으며 이미 새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발령지는 대구 사수동 금호 택지 개발지구의 신설 본당입니다. 건물도 없고 신자들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곳이지요. 아마도 하느님께서는 여기에 제가 필요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일하려 합니다. 원래부터 하던 일을 해야지요. 이번 일 역시도 하느님의 손길을 믿고 하나씩 영적 성전을 지어 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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