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방향에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더라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면 결국 모두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같은 선상에 있더라도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는 갈라지고 맙니다.
너희 말, 내 말, 나를 보내신 분은 같은 방향에 존재합니다. 즉 나를 보내신 분이 최종 목적지이고 그분의 뜻을 전하는 것이 ‘내 말’이며 그 말을 받아서 전하는 것이 ‘너희 말’이 되는 셈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하는 말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가 진실된 말을 하는지 거짓된 말을 하는지, 그가 하는 말의 내용이 무엇이며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그것이 자기 자신인지 아니면 하느님인지를 올바로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따라가다가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선하고 사랑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외아들은 그 사랑을 받아서 전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마땅히 그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방향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같은 방향에 있고,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어받은 예수님의 말을 전하고 있을 때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는 분명하게 갈리게 됩니다. 그렇게 전해지는 말을 듣고 실천하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또 나아가서 예수님을 보낸 분, 즉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전해지는 말의 방향성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그것을 거부하면 그와 동시에 예수님과 하느님을 동시에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 관계 안에는 ‘속이는 자들’이 끼여 있습니다. 즉 자신의 말, 세속적이고 이기적이고 때로는 악하기도 한 말을 마치 ‘하느님의 말’인 양 속여서 전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니 우리는 반드시 이 사업을 이루어야 한다고 외쳐대기도 하고 사람들을 서로 이간질 시키고 증오하게 만들고 투쟁하고 싸우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는 ‘정의’가 끊이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의 내면은 그가 맺는 열매로 살펴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열매를 올바로 분별하기도 전에 그의 현학적인 말들에 속아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분이 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라고 했는지 묻기도 두려운 형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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