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의도는 하느님 앞에 더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행위의 결과를 두고 쉽게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행위의 내적 동기입니다. 설령 누군가에게 돈을 기부 하더라도 아주 더러운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누구에게 시련을 주더라도 그것을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돈을 주면서 장래에 자신이 받을 이득을 챙기려는 그런 계산적인 마음으로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결코 돈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래의 이득을 사려고 사전 작업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 동기는 ‘탐욕’이 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이 탐욕 때문에 훗날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전까지 그는 스스로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보기에 누군가에게 돈을 내어준 외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조금은 가혹해 보이는 명을 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모든 공동체의 장이 겪어야 하는 시련입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그 형제가 하는 오류를 스스로 깨닫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마치 의사가 수술도구로 아픈 부위를 찢어야 하고 그 순간 환자는 고통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한 형제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적절한 외적 조치가 필요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취급을 당하는 이는 자신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험담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훗날 그 시련 덕분에 치유를 받고 나게 되면 도리어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중의 일이 있기 이전에 그 시련을 건네야 하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외적인 불명예를 감수하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한 사람을 심판하곤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일이 일어나는 자리는 바로 인간의 내면입니다. 그리고 이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이 세상에 오신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의 바람이지요. 복음화를 한다, 복음을 전한다, 말씀을 선포한다, 신앙을 전한다, 선교를 한다는 모든 표현은 바로 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을 진정으로 변화시켜 외적인 행동을 이끌어내고 그로 인해서 세상을 진정으로 바꾸는 것이지요.
이는 굉장히 더디고 어려운 작업입니다. 인간의 내면만큼 다채롭고 다양한 영역이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올바른 길을 가다가도 곧잘 유혹에 빠져들고 어둠의 행위를 따라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 즉 복음을 전하는 일은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안심할 수가 없는 일이지요. 우리의 복음화는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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