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마르 10,29-30)
복음에서 말하는 버린다는 의미는 무시한다거나 내팽개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위일 뿐입니다. 진정한 버림은 내면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음식을 쓰레기통에 집어 넣는다고 해서 음식을 향한 나의 애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버림은 그것을 향한 나의 내적인 집착을 끊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것 자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집착하는 내 마음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과 형제에게 집착하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부모님을 섬기는 것과 부모님에게 집착하는 것은 다릅니다. 자녀나 토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그러한 것들을 지니고 살겠지만 그것에 집착하는 것과 그것을 올바른 의미로 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적으로 무언가에서 마음을 떼어놓을 수 있는 이유는 내적으로 선호하는 다른 무언가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바람난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여자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적으로 더욱 선호하는 무언가를 얻게 되면 그 이전의 것에서 마음을 떼어놓을 수 있게 됩니다.
복음이 말하는 것은 ‘예수님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가 마땅히 돌보아야 할 것들을 내던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기 위해서 그에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엉뚱한 가치들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들을 내던지곤 합니다. 유산을 좀 더 얻어내기 위해서 부모를 향한 효심을 내던지는 경우가 대표적인 것이지요. 그 밖에도 우리는 세속적인 욕구 때문에 더욱 소중한 가치들을 내던지곤 합니다. 그렇기에 복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더욱 어렵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사랑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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