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나시는지 모르겠지만 일전에 시내를 거닐다가 만나게 된 어느 야당 대표의 집회 영상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태극기를 들고 차로를 지나가는 집회의 영상을 담았습니다. 딱히 뭘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늘 마주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소개를 한 것 뿐이었지요.
하지만 댓글로 드러나는 저마다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성경의 장면대로 장터의 아이들이 몰려와서 우리가 노래할 때에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할 때에 너희는 울어주지 않았다고 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갑론을박이 펼쳐졌지요.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대로는 콜로세움이 열린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일부의 사람들은 저의 정치성향을 규정해 내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의 노선이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그 순간부터 일종의 ‘적’이 되는 것이었지요.
지금까지 제가 공들여서 가르치려고 했던 내면의 사정은 온데간데 없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바탕으로 숨겨져 있던 것들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좀처럼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는 근본 방향들을 찾아보기란 힘이 들지요.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올바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무언가에 사로잡히게 되고 또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을 어지럽히게 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쉽게 우리 내면의 보물들을 빼앗아 가 버리는지 관찰해야 합니다.
사건을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거기에 해석을 가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심판을 가하는 것은 저마다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어떤 색깔을 그냥 그 색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그 색깔이 역사 안에서는 어떤 의미를, 정치 안에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해석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색깔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고 심판을 내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 가지 태도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하늘나라를 갔는데 나와 생각이 완전히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요? 우리가 그 자체로 ‘악’이라고 규정해 놓았던 누군가가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에 어루만짐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평생을 저주하고 살아왔는데 막판에 돌아온 둘째 아들이 되어 금가락지와 좋은 옷을 선물받고 아버지가 송아지를 잡아 요리를 준비하는 데에 분주하다면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요?
우리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있는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과, 그것을 바탕으로 나의 내면에 분노를 일으키고 그러한 모습을 볼때마다 내면을 어지럽히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 태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이들입니다. 올바로 관찰하고 올바로 해석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하느님의 몫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내면으로 심판을 내려버린 사람은 자신의 심판을 벗어나는 이들을 마주하는 것이 절대로 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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