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상충하는 일이 벌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하곤 하지요. 그때에 우리는 잠시 분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나는 어디로 가는가?
즉 내가 하는 일의 방향성에 대한 점검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을 요구하기에 주변에서 그 일에 반대하느라 시끄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미사와 고해성사를 열심히 드리겠다고 하면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제가 어떤 이벤트성 행사를 하겠다고 나서면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나서서 반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2) 그(나와 부딪히는 이)는 어디로 가는가?
이 또한 중요한 점검 포인트입니다. 그가 나와 부딪히는 부분이 합당한 것이고 내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라면 나는 기꺼이 나의 뜻을 내려놓고 그의 의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엉뚱한 것이라면, 우리가 가야 하는 목적지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이끌려는 방향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3) 우리는 충분히 대화하고 있는가?
아무리 좋은 것을 지니고 있어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지를 지니고 있어도 그것이 주변 사람에게 충분히 가 닿지 못하게 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서로의 방향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방향을 가고 있다면 서로 존중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 더 나은 방법을 고를 수 있어야 합니다.
4) 인내
하지만 일이 언제나 이렇게 아름답게 이루어지라는 법은 없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애시당초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옳다고 우기면서 상대에게는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감정적 충돌로 그것을 드러낼 뿐이지요. 인격적 미성숙함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그 밖에도 수많은 인간적 오류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인내’가 됩니다. 인내라는 가치는 참으로 소중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인내로써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수많은 충돌과 부딪힘 속에서 우리는 참아 견딜 줄을 알아야 하고 우리의 올바른 방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은 더욱 복잡다단합니다. 그러나 이 방향성의 점검에 대한 문제, 그리고 대화에 대한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본 바탕이 되는 인내라는 덕목도 중요한 것입니다. 모쪼록 모든 이들이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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