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마르 10,5)
완고한 마음은 굳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의 살이 부드럽지만 그 아이가 성장을 하고 궂은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손에 굳은살이 배이는 것처럼 마음도 처음에는 부드럽고 순수하고 온유하지만 점차적으로 하나의 생각이나 사상에 굳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완고한 마음이 되는 것이지요. 고집스런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고집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좋은 쪽으로도 얼마든지 고집스러울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뜻을 지켜 나가려는 뜻으로 고집스러워 질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고집스러워지는 이유는 정반대의 이유가 대부분입니다. 즉,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고집스러운 것이지요.
누군가를 증오하는 데에 고집스럽고, 세상 것에 집착하는 데에 고집스러운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 즉 용서하려는 결심을 하지 못하며 눈을 들어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완고한 마음에 필요한 것은 ‘법’입니다. 질서를 지키려는 사람에게는 신호등이 필요없지만 반대로 질서를 어기려는 사람에게는 신호등이 필요하고 그것을 어겼을 때에 그에 합당한 ‘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려는 사람에게는 죄의 벌이 아무 상관이 없지만 죄를 지으려는 사람에게는 죄의 벌이 필요하지요. 바로 더 큰 죄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완고합니다. 그래서 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법은 더는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완고한 마음은 굳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의 살이 부드럽지만 그 아이가 성장을 하고 궂은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손에 굳은살이 배이는 것처럼 마음도 처음에는 부드럽고 순수하고 온유하지만 점차적으로 하나의 생각이나 사상에 굳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완고한 마음이 되는 것이지요. 고집스런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고집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좋은 쪽으로도 얼마든지 고집스러울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뜻을 지켜 나가려는 뜻으로 고집스러워 질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고집스러워지는 이유는 정반대의 이유가 대부분입니다. 즉,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고집스러운 것이지요.
누군가를 증오하는 데에 고집스럽고, 세상 것에 집착하는 데에 고집스러운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 즉 용서하려는 결심을 하지 못하며 눈을 들어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완고한 마음에 필요한 것은 ‘법’입니다. 질서를 지키려는 사람에게는 신호등이 필요없지만 반대로 질서를 어기려는 사람에게는 신호등이 필요하고 그것을 어겼을 때에 그에 합당한 ‘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려는 사람에게는 죄의 벌이 아무 상관이 없지만 죄를 지으려는 사람에게는 죄의 벌이 필요하지요. 바로 더 큰 죄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완고합니다. 그래서 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법은 더는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