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하나의 증언이 됩니다. 그리고 그 증언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을 끌어 당기거나 배척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세상의 야욕보다는 영원한 생명의 증언이고 그 증언은 당신의 삶의 단편으로 잘 드러납니다.
하지만 세상의 증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힘과 권력에 빌붙는 사람들이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재화의 능력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예수님의 증언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분의 양이 아닌 이들에게 그분의 증언은 그 자체로 따분함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본적으로 듣지 않고 들어도 실행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제 앞에서 딴청을 피우며 제 말을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사람에게는 조언하기를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언의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증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안정된 수익을 보장한다는 사기꾼의 말을 믿고, 앞으로 운수가 대통할 것이라는 점쟁이의 말은 굳게 믿어도 고난을 통해서 부활에 이르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 너희는 세상 모든 이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은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하고 도망쳐 버리고 싶은 말이 됩니다.
예수님의 증언은 '구원'이라는 것과 연계되고 영혼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증언을 깨닫고 알아듣는 영혼들은 그분을 붙들고 나면 놓을 줄을 모릅니다. 그분 말고는 그 어디서도 영원한 생명의 증언을 얻을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볼리비아에서 함께 사목을 한 콜롬비아의 꼰수엘로 라고 하는 수녀님이 메신저로 음성 메세지를 보내 오셨습니다. 당신의 증언 속에는 제가 볼리비아에서 한 사목의 결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저를 만난 것을 감사하셨고 저 역시 그 수녀님을 만난 것을 감사히 여깁니다. 저는 주님의 양이고 그분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애를 쓰는 사제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한 명의 사목자로서 양들을 치는 직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양들은 제 목소리를 알아 듣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따릅니다. 그리고 스스로 구축한 내면의 추구에 따라서 누군가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누군가는 세속의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누구의 목소리를 따를 것인가 하는 것은 오늘 이 순간에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원하는 것을 찾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우리를 예수님의 증언 앞에 선물하신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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