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저마다의 사상과 이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같은 신앙인이라도 저마다의 정치색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그걸 바탕으로 다툼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신앙을 가장 중심에 놓고 생활할 수 있다면 서로 다른 의견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뜻에 맞는 길을 모색하고 서로 존중하며 일치점을 찾아 나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신앙인을 가장한 정치꾼일 뿐입니다.
왼손은 오른손과 모양새가 분명히 다릅니다. 아니, 발과 손은 모양 자체가 다릅니다. 하지만 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발은 몸을 이리 저리 이동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손은 사물들을 조작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같은 몸에 붙어 있는 두 지체가 저마다 다르며 고유한 역할을 하는 데에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기에 우리의 몸이 올바로 생활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 일치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은 하나의 머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다양성을 지니지만 같은 머리를 지니고 있기에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게 되고 보다 더 필요한 곳에 우선권을 부여하게 됩니다. 예컨대 손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이, 머리, 너는 왜 발에만 양말을 신겨주냐? 나도 좀 돌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 사실 중요한 일은 내가 더 많이 하지 않냐?'
때로 몸 한 쪽이 마비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걷는 것조차 힘겨워 합니다. 자신의 몸인데 마치 한 쪽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비라는 것은 우리의 몸이 우리의 몸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공동체 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같은 뜻으로 움직이길 바라지만 마비된 공동체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그 공동체는 마치 다른 지체를 달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의 노를 젓는 이들이 오른쪽 따로 왼쪽 따로 저마다의 지휘관의 목소리에 움직이면 배는 절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비록 왼쪽과 오른쪽의 노를 젓는 이들이 다르지만 그들을 지휘하는 목소리는 하나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삶의 방향으로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는 방향을 올바로 식별하고 그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공동체는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어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진정한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것은 식별하기 힘든 일이 아닙니다. 나를 최종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가치의 기준점이 무엇인가를 바라보면 됩니다. 그 한가운데에 주님을 모신 이들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이 그때 그때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를 섬기는지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에 분열을 야기하고 형제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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