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는 생각과 하느님이 하는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은 통상적으로 훨씬 좁은 시야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변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또한 이기심이나 집단주의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친구들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하느님의 시선은 너무너무 커서 우리는 마치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구 위에 서 있지만 지구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구는 총알보다도 빠른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지만 우리는 그저 태양이 뜨고 지는 것만 볼 뿐, 우리 자신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는 줄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대상은 전 인류, 나아가서 모든 피조물을 그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다보니 짧은 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숨쉬고 살아있는 동안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의외로 악인들이 성공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떵떵거리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분명히 부당한 일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러한 부당함을 바꿔보기 위해서 애써 싸우지만 사실 상황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악인들은 여전히 득세할 것이고 의인들은 수난 당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시선을 넓힐 수만 있다면 세상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현생'에 모든 것을 거는 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을 쥐고 계시는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은 모든 것을 당신의 정의대로 돌려 놓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악을 저지른 이는 심판을 받게 되고 꾸준히 선을 행한 이는 영원한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뭔가 부적같은 걸 잘 써서 어딘가 붙여 놓으면 순간 성공을 얻게 되는 마법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런 내적 욕구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신앙에 대해서 그릇된 환상을 지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그릇된 신앙을 따라 걸려 넘어지는 일이 흔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의외로 가장 현실적인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우리가 현실을 가장 적극적으로 살게 도와주며 영원을 기다리게 도와 줍니다. 진리는 쉽게 변하지 않으며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또 앞으로 영원까지 그 진가를 드러낼 것입니다. 부활초에 적혀 있는 알파요 오메가라는 뜻이 바로 이 뜻입니다. 반면 그 진리를 거부하는 이들은 그 진리가 상징하는 돌에 걸려 비틀거리고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시온에 돌을 놓는다. 선택된 값진 모퉁잇돌이다. 이 돌을 믿는 이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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