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잔치
요한 복음의 2장에 이르러 우리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을 접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이 기적이 아직 때가 이른 데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님이셨습니다.
이 기적에서 예수님은 어머니를 '여인아, 여자야'라고 낮춰 부릅니다.
이 말인즉슨 예수님은 지금 한 인간의 아들의 위치가 아니라,
하느님의 외아들로서의 자리에서 말씀하고 계심을 뜻합니다.
(훗날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서 똑같은 명칭으로 어머니를 부르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잉태를 다루면서 성모님의 자리를 밝히 드러내지만,
요한 복음에서 우리는 어찌보면 더 실제적이고 필요한 성모님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청원자'로서의 교회의 어머니 성모님의 위치입니다.
예수님에게 사람들의 필요를 전달하는 전달자이신 어머니,
그분은 여전히 교회의 어머니로서 같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소중한 어머니를 내칠 수 없습니다.
개신교의 형제들이 제 아무리 '어머니'를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의식있게 복음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어머니의 소중한 모습을
올바른 양심을 가지고 끝까지 내칠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우리 교회의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이 성모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우리 가톨릭 교회 안에서 안타까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성모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자칫 아드님의 소리를 무시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결코 당신 자신을 들어높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늘 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드님을 따르고자 노력했습니다.
헌데 사람들이 성모님을 '상품화'하면서
성모님의 기적을 찾고
성모님의 중재의 자리에 자신들의 탐욕을 끼워넣어
성모님의 본뜻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성전 정화사건
타 복음에서는 중반이 지나야 나오는 사건이
요한 복음에서는 2장에서부터 나옵니다.
이 한 가지 사건으로 예수님의 방향은 분명하게 제시됩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3일만에 다시 짓겠다."
무엇이 성전일까요?
3일만에 다시 지어진 성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몸,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물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정화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교회',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른 것들을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충분합니다.
교회를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마지막에는 의미심장한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것을 알고 계셨다."
밀과 가라지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남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구에게 가라지가 들었는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사랑하시고 더욱 사랑하시어 결국에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십니다.
예수님의 이 알면서도 속아주는 사랑을 깨닫는 사람이라야,
이 요한 복음의 가르침을 꾸준히 따라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여,
세상이 몰라준다고 섭섭해하지 마시고 가던 길을 계속 가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상상도 못할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악인들이여,
세상을 기만할 수 있다고 안심하지 마시오.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상상도 못한 재난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 힘쓰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