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세로개념(채우는 시간)
지금부터 두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소년은 현대를 살아간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부모가 있고,
신앙심이 있다.
다만 이런 모종의 것들을 현대적인 배경에서 이루어간다.
즉, 아이폰과 컴퓨터, 텔레비전과 비행기가 날라다니는 현대적인 배경 속에서
이러한 삶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다른 한 소년은 200년 전의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마찬가지이다.
친구들이 있고,
부모가 있고,
신앙심이 있다.
다만 200년 전의 분위기를 바탕으로 이루어간다.
즉, 차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아이폰이라는 건 상상도 못할 시기이다.
둘의 놀이문화는 완전히 다르겠지만,
'논다'는 것은 똑같다.
둘이서 학교에 가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배운다'는 건 똑같다.
이런 수평방향의 시간의 서로다른 두 파트(2012와 1812) 속에서
그 두 소년이 하루를 살아가면서 채워 나가야 하는
시간의 수직방향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현대의 소년도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한다면,
그의 수직방향의 시간은 채워진 것이고,
과거의 소년도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한다면,
그의 수직방향의 시간도 채워지는 것이다.
하루라는 시간 안에서 둘의 활동은
기상, 세면, 아침식사, 오전활동, 점심, 오후활동, 저녁, 친교시간, 수면.
이라는 일상의 활동에서 차이가 전혀 없다.
그럼 하루의 수직방향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혹은 매 순간의 수직 방향을 무엇을 기준으로 둘 것이며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답은 '하느님'이다.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을 추구하면 된다.
하느님은 '자연스러운' 걸 좋아하신다.
아침에 일어나고, 세끼 잘 챙겨먹고, 일 열심히 하고, 적당히 쉬고 놀고,
그리고 수면을 취하기를 바라신다.
다만 그런 가운데 '열매맺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원래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맺을 수 있는 열매는 없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느님이 기다리는 열매는 '사랑'의 열매이다.
나 자신의 '십자가', 즉 '희생'을 통한 '사랑'의 열매.
이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일수록,
하루를 더 충실히 채워나갈 것이며,
마침내 가로 개념의 시간이 끝나는 날에
약속된 상급을 받게 된다.
하루를 온종일 사랑으로 채우라.
기상하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라.
그리고 나머지 시간 가운데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시간이 있다면,
그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들을 내어 바치자.
돌아와서 남은 시간 동안에도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자.
쉬는 시간도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쉬자.
어두운 놀이 문화는 가급적 피하고,
건전하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갈구하자.
그리하면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서
마음이 편안할 것이요,
다음날을 더욱 힘차게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온 하루가 사랑으로 가득찰 그 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