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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축일 강론(도구의 특징과 병자의 두 부류)


마태오 축일 강론

도구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특질을 사용하게 됩니다.
칼은 의사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용도로
강도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용도로 쓰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본성상 지닌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급한 성격을 지니고 있고,
누군가는 느긋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닙니다.
급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하느님의 손길에 있으면
당신의 일을 이루는 데에 주저함이 없게 되고,
그가 어둠의 손길에 있으면,
괴팍하게 다른 이들에게 성질을 내게 될 것입니다.

느긋한 성격을 지닌 이는,
하느님과 더불어 만사를 인내로이 참아 견디고,
어둠의 손길에 머무는 이는,
이웃의 아픔을 느긋하게 무시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오를 고르셨습니다.
마태오가 가진 온갖 장점을 살려서 복음선포의 사명을 맡기기 위해서였습니다.
마태오는 그 직분을 훌륭히 수행해 내었고,
결국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됩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하느님 앞에 선 3 종류의 인간들입니다.
먼저는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성인'입니다.
분명 이 세상에서부터 존재하지만
0.0000000001%의 비율로 존재합니다.

그럼 나머지는 다 죄인들, 영적 병자들입니다.
헌데 이 죄인들이 두 부류로 나뉩니다.
자신의 미흡함을 알고 약을 찾는 병자들과
자신들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채로 중한 병들을 무시하는 병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첫째 부류의 병자들과 어울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병자들에게 최고의 병원이자 약국, 최고의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둘째 부류의 병자들은 다가오는 예수님을 비난하고 무시하고 침을 뱉고
심지어는 살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자신들의 병을 치유하러 온 의사를 죽여버린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이들은 이 두 부류의 병자들로 나뉘어집니다.
우리는 과연 어느쪽에 속할까요?
당신은 예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까?
기도하시나요? 영적인 조언을 구하나요?

아니면 예수님의 도움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걱정이 더 우선입니까?
영혼 따위는 주일미사에나 나가면 된다고 착각하시나요?
종교나 신앙은 현세 생활의 옵션일 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당신은 어느 부류의 병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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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를 모시는 방법

- 성체를 손으로 모시는 게 신성모독이라는데 사실인가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일단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체를 입으로 직접 받아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수난 만찬때에 제자들과 모여 함께 나눈 빵을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입만 벌리고 받아 모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손으로 빵을 받아서 나누어 옆의 동료들에게 나누어가며 먹었습니다. 하지만 성체에 대한 공경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감에 따라 부스러기 하나라도 흘리지 않으려는 극진한 공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제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고 받아모시게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신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또 입으로 모시다가 자꾸 사제의 손에 침이 발리니 위생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손으로 받아 모시게 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과 같은 곳은 입으로 받아 모시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전부가 손으로 받아 모십니다. - 그럼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건가요? - 제가 보았을 때에는 성체에 대한 극진한 존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체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손으로 모시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할 필요는 없지요. 여기서는(볼리비아에서는) 입으로 모시는 사람과 손으로 모시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고 둘 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모시는 이들의 혀가 제 손에 자꾸만 닿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이는 굉장히 비위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모시는 것이 성체를 흘리고 떨어뜨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모시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지요. 다만 손으로 모실 때에는 미사 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왼손 아래에 오른손을 받치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왼손으로 성체를 받아 뒤의 사람이 앞으로 나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나서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손에 남은 부스러기를 함부로 다루지 말고 입으로 가져가서 혓바닥으로 깨끗이 처리할 필요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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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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