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이 볼리비아 현지에서 느끼는 해외선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한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너희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이 두 성경구절로 '필요성'은 충분하리라고 생각하는데요. ㅎㅎㅎ
원론적인 말이 아니냐고 해 버리기 쉽지만,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를 살아가지 않는다는 데에 있죠. 해외 선교의 필요성은 사제들의 복음의 순수성을 찾아나가기 위해서 절실하다고 봐요.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사제로서의 가장 보람된 일을 하는 기회가 되는 거죠. 하지만 단순히 사제들의 그런 필요로만 해외선교를 '이용'해 먹기만 해서도 안되죠. 대구교구가 해외선교를 오랜 시간 많이 보내온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 해외선교를 올바로 바라보고 있고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느냐는 데에 대해서는 잘 분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어느 분의 해외선교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드린 나의 답변.
사실 비단 "해외"가 붙은 선교만이 아니라,
"선교"자체가 절실한 것이다.
대구교구에서 하도 "가두선교"를 해 놔서,
선교라고 하면 바로 가두선교를 떠올리게 되기 쉽상인데,
진정한 선교는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마음 쓰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정, 내 직장, 내 학교, 내가 머무는 모든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선교가 될 것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기 위해서 덧붙이자면,
교회 이름으로 해외에 나왔다고 다 선교는 아니다.
길거리에서 사람 붙들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한다고 다 선교는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이들"이 진정한 선교사이다.
이때 하느님의 말씀을 깨끗한 마음으로 잘 들어야 오해가 없다.
쓸데없는 교리 지식이나 곡해된 말씀이 아니라,
진정한 "예수님의 마음, 당신의 사랑"을 읽어내고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교회가 신경써야 할 부분이며,
결국 교회의 생명력을 증가하는 핵심 행위가 될 것이다.
이 본질적인 '선교사명'을 잃은 교회는 희망이 없다.
하느님은 '이스라엘민족'이라는 줄기를 쳐 내고 우리를 접붙이셨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합당하게 살지 못하면 우리를 쳐내시고 새로운 가지를 접붙일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하느님은 돌들에게서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일으키실 수 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여,
주님의 명 아래 함께 일어나 세상을 향해 외치도록 하자.
"하느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려 하십니다. 마음을 바꾸고 하느님의 이 희망찬 소식을 들으십시오."
옛날 말로 표현하면 이거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헌데 이 옛날 말은 왠지 딱딱해 보이고, 낡아 보인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이들이 사제들인데...
사제들은 옛 것이 좋다고만 하고 옛 것에 머물려고 한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왔다.
새로운 복음화가 필요하다.
말인즉슨, 유행 따라서 '성당 스타일'을 만들라는 게 아니라(그건 그냥 코메디로 보고 웃어 넘기고 말아라, 그렇다고 또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로이 해서,
이 어둠이 만연한 문화에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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