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한 사람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에
그의 신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세상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유없어 보이는 고통을 자진해서 지고 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사는 사람은
'고통'은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고통'이란
우리의 구세주께서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기꺼이 감내하신 것이며
그분을 따르는 우리가 마땅히 지고가야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하느님 앞에 죄인들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주시는 그 어떤 것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진정한 '죄'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죄라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짐'인데,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하느님을 '고정된 어떤 것'으로 착각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법률 규정'을 두고 하느님이라고 생각하고
그분의 뜻이 담겨 있노라고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인간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막기 위한 마지막 울타리일 뿐이고
우리들의 하느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인식이 불명확해서,
그분을 거스르는 죄가 존재할 수 없고,
그들은 이 세상을 제 딴에는 '정의롭게' 꾸려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에게서 더욱 멀어지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식이 없기에,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고통'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 다니는 A씨는
주일 미사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레지오 모임도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주말에 여행도 가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에
직장에서는 모범 사원입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았을 때에,
주일미사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신실한 사람으로 평가해주기를 바라면서 보란듯이 가는 것이고,
레지오는 그 모임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높은 권력의 신자들과의 친분을 놓치지 않기 위함입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은 주변 친지들의 시선을 고려해서 하는 이벤트이고
직장에서는 승진을 이루기 위해서 겉 꾸민 열성을 다하고 있는 중입니다.
실상 그의 삶 안에는 '하느님의 자리'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활동은 '인간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에게 행여 어느날 '암'이라고 선고되는 날이면,
이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온 사람은
하느님을 저주하기 시작할 것이며,
주변 사람들은 평소와 완전히 다른 전혀 의외의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지만,
사실은 미리 예비되어 온 당연한 결과에 불과합니다.
이유없는 고통이 다가올 때에 흔히들 하는 말이,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것입니다.
네, 세상적인 시각으로 그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잊은 것이 그의 잘못입니다.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나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것이
그의 잘못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