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투덜거리는 것입니까? 당신이 하느님 앞에서 한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리와서 당신의 하루를 셈을 해 봅시다.
당신은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그 새로운 하루의 삶에 당신은 하느님께 감사하기는 커녕 온갖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아침식사는 당신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밥을 먹으면서도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그 음식을 준비한 이를 무시하지 않았습니까? 더군다나 그 음식을 먹고 난 뒤의 뒷처리를 할 사람의 마음은 생각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직장이 있다는 것은 당신이 일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그 일할 수 있는 만큼의 건강은 당신이 처음부터 거저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당신의 육체 안에는 하느님의 뜻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노동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거룩한 세상의 책무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늘 지금 하는 일에 투덜거리기 일쑤였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더 성실하고 책임있게 수행해서 하느님이 바라보시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기보다 당신은 온종일을 투덜거리고 상사의 눈치만 보고 뒤에서 누군가를 험담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을 써버렸습니다.
점심이 되어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신에게 물질적인 축복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밥 한 끼 먹는 것이 힘들어 손을 벌려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적어도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당신이 원하는 음식을 당신이 노동한 댓가를 들고 가서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걸 전혀 느끼지 못했지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당신은 이미 당신의 자동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이미 당신이 지구상에서 10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부유층이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당신의 눈에는 당신을 거슬리게 하는 운전자들 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당신은 그들을 향해서 온갖 독설을 전혀 삼가하지 않았지요.
돌아온 집에서 아이들을 만났지만 당신은 그들 안에 숨어있는 찬란히 빛나는 가치들을 여지없이 무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재잘대는 수다에 귀를 기울이기는 커녕 당신은 다시 세상의 걱정거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텔레비전의 뉴스를 틀었지요. 과연 당신은 하느님이 마련하신 ‘어린 아이’라는 축복을 깨닫기나 하는 것입니까? 하늘 나라는 그들의 것입니다.
실컷 휴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에 당신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저녁기도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당신의 아내는 아이들을 추스려 함께 가족기도를 바쳤고 그 기도 안에는 당신의 건강을 위한 지향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입니까? 이러고서도 주일에는 신자랍시고 성당에 나와서 하느님 앞에 따지기 시작한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감사… 당신이 드리고 있는 주일미사는 우리가 이미 받은 은총에 감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감사는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그 새로운 하루의 삶에 당신은 하느님께 감사하기는 커녕 온갖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아침식사는 당신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밥을 먹으면서도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그 음식을 준비한 이를 무시하지 않았습니까? 더군다나 그 음식을 먹고 난 뒤의 뒷처리를 할 사람의 마음은 생각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직장이 있다는 것은 당신이 일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그 일할 수 있는 만큼의 건강은 당신이 처음부터 거저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당신의 육체 안에는 하느님의 뜻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노동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거룩한 세상의 책무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늘 지금 하는 일에 투덜거리기 일쑤였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더 성실하고 책임있게 수행해서 하느님이 바라보시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기보다 당신은 온종일을 투덜거리고 상사의 눈치만 보고 뒤에서 누군가를 험담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을 써버렸습니다.
점심이 되어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신에게 물질적인 축복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밥 한 끼 먹는 것이 힘들어 손을 벌려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적어도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당신이 원하는 음식을 당신이 노동한 댓가를 들고 가서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걸 전혀 느끼지 못했지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당신은 이미 당신의 자동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이미 당신이 지구상에서 10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부유층이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당신의 눈에는 당신을 거슬리게 하는 운전자들 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당신은 그들을 향해서 온갖 독설을 전혀 삼가하지 않았지요.
돌아온 집에서 아이들을 만났지만 당신은 그들 안에 숨어있는 찬란히 빛나는 가치들을 여지없이 무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재잘대는 수다에 귀를 기울이기는 커녕 당신은 다시 세상의 걱정거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텔레비전의 뉴스를 틀었지요. 과연 당신은 하느님이 마련하신 ‘어린 아이’라는 축복을 깨닫기나 하는 것입니까? 하늘 나라는 그들의 것입니다.
실컷 휴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에 당신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저녁기도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당신의 아내는 아이들을 추스려 함께 가족기도를 바쳤고 그 기도 안에는 당신의 건강을 위한 지향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입니까? 이러고서도 주일에는 신자랍시고 성당에 나와서 하느님 앞에 따지기 시작한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감사… 당신이 드리고 있는 주일미사는 우리가 이미 받은 은총에 감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감사는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