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 6,8)
그렇다면 청원기도는 필요가 없겠군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사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데 주시는 분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상황은 이러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셔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헌데 우리는 정작 우리 자신을 잘 모르고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몰라서 우리에게 필요하다 싶은 것을 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한다고 생각하고 하느님에게 청을 드리는 것이지요.
이 청을 드리는 행위를 하느님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믿지 않는 대상에게 청을 드리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달라고 요청하는 대상은 적어도 내가 그를 신뢰할 때에, 즉 나에게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힘이 없고 내가 청하는 그가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줄 권능이 있다고 믿을 때에 청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손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을 왜 청하겠습니까?
바로 이 행위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하느님은 이런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의 청을 받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주시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청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1000만원이 꼭 필요하다고 돈을 벌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번번이 사업이 실패합니다. 더 많은 시련을 겪고 더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실 일종의 ‘시험’에 드는 것이지요. 그의 믿음이 진실한가 아닌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을 잊지 않는 사람인가를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첫 난관 속에서 신앙을 저버리고 현실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이 시련을 견디고 나면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먼저 내어주십니다. 즉 돈을 벌게 해 달라고 청하는 사람에게 사실은 가족간의 일치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그 망한 사업을 바탕으로 가족이 하나로 뭉치게 해 줍니다. 이전에 돈이 풍부할 때에는 가족들이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살았는데 이제 돈이 없으니 도리어 가족이 서로 힘을 모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런 상황에 감사하기 시작할 때에 하느님은 그의 신앙을 보시고 당신의 권능 속에서 굳이 이루지 않아도 될 소소한 것까지 모두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축복은 꾸준하고 굳건한 신앙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청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쉼 없이 드려야 하고 하느님이 귀찮을 정도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이 실은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최악의 결과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실은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욕하겠지만 그 정도 시련은 꿋꿋하게 견뎌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청원기도는 필요가 없겠군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사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데 주시는 분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상황은 이러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셔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헌데 우리는 정작 우리 자신을 잘 모르고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몰라서 우리에게 필요하다 싶은 것을 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한다고 생각하고 하느님에게 청을 드리는 것이지요.
이 청을 드리는 행위를 하느님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믿지 않는 대상에게 청을 드리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달라고 요청하는 대상은 적어도 내가 그를 신뢰할 때에, 즉 나에게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힘이 없고 내가 청하는 그가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줄 권능이 있다고 믿을 때에 청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손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을 왜 청하겠습니까?
바로 이 행위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하느님은 이런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의 청을 받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주시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청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1000만원이 꼭 필요하다고 돈을 벌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번번이 사업이 실패합니다. 더 많은 시련을 겪고 더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실 일종의 ‘시험’에 드는 것이지요. 그의 믿음이 진실한가 아닌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을 잊지 않는 사람인가를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첫 난관 속에서 신앙을 저버리고 현실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이 시련을 견디고 나면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먼저 내어주십니다. 즉 돈을 벌게 해 달라고 청하는 사람에게 사실은 가족간의 일치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그 망한 사업을 바탕으로 가족이 하나로 뭉치게 해 줍니다. 이전에 돈이 풍부할 때에는 가족들이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살았는데 이제 돈이 없으니 도리어 가족이 서로 힘을 모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런 상황에 감사하기 시작할 때에 하느님은 그의 신앙을 보시고 당신의 권능 속에서 굳이 이루지 않아도 될 소소한 것까지 모두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축복은 꾸준하고 굳건한 신앙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청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쉼 없이 드려야 하고 하느님이 귀찮을 정도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이 실은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최악의 결과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실은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욕하겠지만 그 정도 시련은 꿋꿋하게 견뎌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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