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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와 인내

지난 주일 저녁미사때에 청년들에게 한 말이 기억이 납니다.

- 음식이 언제 제일 맛있는지 아니? 바로 배고플때야. 우리의 욕구가 존재하고 그것이 채워질 때에 우리는 행복해지는거지. 배가 부르면 더는 배고픔이라는 욕구를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더 쾌락적인 음식을 찾게 되는거야.

너희들이 서로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야. 너희 때의 적절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좋은 일이지. 젊은 시절에 사랑하는 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건 좋은거야. 하지만 모든 것을 미리 체험해 버리려 한다면 너희들은 쾌락에 사로잡히게 되는거지.

신부님도 너희 만한 때에 여자친구를 사귀어 봤어. 어떻게 하면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볼까 고민하곤 했었지. 그리고 서로 손이 닿는 날이면 그 짜릿하고 황홀한 기분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어. 헌데 여기는 어때? 아예 속살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다 입고 다니지. 텔레비전만 켜면 여성들이 비키니를 입고 레이나 데 만사나(사과 여왕, 우리나라로 치면 미스 능금, 또는 능금 아가씨), 레이나 데 치꿍구냐(치꿍구냐 여왕)이라며 온갖 타이틀을 붙여서 속살을 다 드러내고 있지. 그러니 자꾸만 더한 쾌락을 찾게 되는거야.

절제를 배울 줄 알게 되기를 바래. 하느님이 여성들에게 생리 주기를 준 것은 남성들이 그 주기를 존중하고 참을 줄 알게 되기를 바라셨던 거야. 왜냐면 남자들은 매일매일 성욕이 넘쳐나니까. 여성들의 임신 주기를 잘 알고 서로 존중해서 인내하다가 부부 사이에 기쁨을 맛보기를 바라신 거지. 하지만 쾌락만을 추구해서 매일같이 관계를 갖다가는 결국 질려버리고 더 나은 쾌락을 찾게 되는거야. 불륜이 생기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이기도 해.

절제와 인내를 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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