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와 화해해야 합니다.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과거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감정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지요. 우리가 누군가와 다투었을 때 느꼈던 분노와 억울한 심정은 내가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고스란히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화해가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화해를 하려면 화해할 능력을 갖춘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로서는 이 자리에 예수님 말고 더 적절한 능력을 지니신 분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악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과거와 화해하지 못합니다.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을 다시 천천히 곱씹으면서 다시금 나 자신을 살펴봅니다. 그 일이 타인의 죄과로 이루어진 일이라면 그를 불쌍히 여기고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우리의 구세주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이 나를 용서하시니 나 역시 그를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만일 나의 오류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 오류를 찬찬히 되살피고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결심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를 정돈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지요.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런 작업 없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고해를 봅니다. 모든 암울함과 어두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여전히 마음에 증오가 식지 않은 채로 허겁지겁 고해소에 들어와서 ‘주일 어긴 것’만 고해를 합니다. 그러니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여전히 그는 과거 속에 얽매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덮어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처는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치유를 진정으로 이룰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분이 오신 목적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영원의 희망, 불멸의 희망을 바탕으로 현세의 모든 억울함을 당신에게 봉헌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억울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과거의 고통과 억울함을 기꺼이 그분에게 내어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화해가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화해를 하려면 화해할 능력을 갖춘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로서는 이 자리에 예수님 말고 더 적절한 능력을 지니신 분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악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과거와 화해하지 못합니다.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을 다시 천천히 곱씹으면서 다시금 나 자신을 살펴봅니다. 그 일이 타인의 죄과로 이루어진 일이라면 그를 불쌍히 여기고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우리의 구세주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이 나를 용서하시니 나 역시 그를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만일 나의 오류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 오류를 찬찬히 되살피고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결심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를 정돈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지요.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런 작업 없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고해를 봅니다. 모든 암울함과 어두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여전히 마음에 증오가 식지 않은 채로 허겁지겁 고해소에 들어와서 ‘주일 어긴 것’만 고해를 합니다. 그러니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여전히 그는 과거 속에 얽매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덮어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처는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치유를 진정으로 이룰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분이 오신 목적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영원의 희망, 불멸의 희망을 바탕으로 현세의 모든 억울함을 당신에게 봉헌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억울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과거의 고통과 억울함을 기꺼이 그분에게 내어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