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달콤한 사탕이 아닙니다. 쓴 약이고 사람을 살리는 약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로 대변됩니다. 고통과 죽음의 상징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본질에 접근해 갈수록 저항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과 공동체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런 환상의 시기는 얼마 가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고 시간이 갈수록 공동체의 본질적인 모습을 알게 됩니다. 죄인들의 공동체이고 부족한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지요. 아마 시간이 더 흐른다면 더 많은 오류들을 관측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환상도 깨어져가게 마련이지요. 사제나 수도자의 뒷담화를 듣기 시작하면 상당히 진전된 셈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별로 세부적으로 다르긴 하겠지만 전체 줄기는 비슷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사실 하느님이 모르시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수많은 복음 구절에서 여러가지로 이에 대한 말씀을 남겨 두셨습니다.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떠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청소를 할 수도 있지요. 결국엔 저마다 자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을 적용하는 법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 책임이 아니다’며 떠나기를 선택하지요. 그러는 동안 일부 사람들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청소다’라며 청소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떠나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또 다른 더러움입니다. 사실 교회 안의 문제는 인간들이 모여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일어나는 것의 단편일 뿐이지요. 그럼에도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그 안에서 성령의 활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세상은 보다 강하고 영리한 사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는 아직 희망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자녀들이 자신을 희생해서 청소를 하는 것입니다.
청소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점점 더 덜 힘들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더 힘든 청소를 도맡을 수 있게 되지요. 하지만 더럽다고 피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신경질적이 되어 갑니다. 왜냐면 어딜 가나 더러움을 마주하게 되고 그것이 피해 도망다니는 사람이니 성질이 날 수 밖에요.
예수님이 당신을 안전한 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십자가의 길’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걸어가면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늘 신경을 쓰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십자가를 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작은 십자가에 충실하는 사람은 훗날 커다란 십자가도 기꺼이 지게 됩니다. 반대로 일상의 작은 십자가를 내던지는 사람은 아주 작은 상처에도 울상을 지으면서 아프다고 징징댈 것입니다. 엄마가 원하는 가방을 사주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엄마 없이 자라나고도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아이도 있습니다.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과 공동체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런 환상의 시기는 얼마 가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고 시간이 갈수록 공동체의 본질적인 모습을 알게 됩니다. 죄인들의 공동체이고 부족한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지요. 아마 시간이 더 흐른다면 더 많은 오류들을 관측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환상도 깨어져가게 마련이지요. 사제나 수도자의 뒷담화를 듣기 시작하면 상당히 진전된 셈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별로 세부적으로 다르긴 하겠지만 전체 줄기는 비슷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사실 하느님이 모르시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수많은 복음 구절에서 여러가지로 이에 대한 말씀을 남겨 두셨습니다.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떠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청소를 할 수도 있지요. 결국엔 저마다 자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을 적용하는 법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 책임이 아니다’며 떠나기를 선택하지요. 그러는 동안 일부 사람들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청소다’라며 청소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떠나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또 다른 더러움입니다. 사실 교회 안의 문제는 인간들이 모여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일어나는 것의 단편일 뿐이지요. 그럼에도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그 안에서 성령의 활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세상은 보다 강하고 영리한 사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는 아직 희망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자녀들이 자신을 희생해서 청소를 하는 것입니다.
청소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점점 더 덜 힘들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더 힘든 청소를 도맡을 수 있게 되지요. 하지만 더럽다고 피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신경질적이 되어 갑니다. 왜냐면 어딜 가나 더러움을 마주하게 되고 그것이 피해 도망다니는 사람이니 성질이 날 수 밖에요.
예수님이 당신을 안전한 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십자가의 길’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걸어가면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늘 신경을 쓰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십자가를 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작은 십자가에 충실하는 사람은 훗날 커다란 십자가도 기꺼이 지게 됩니다. 반대로 일상의 작은 십자가를 내던지는 사람은 아주 작은 상처에도 울상을 지으면서 아프다고 징징댈 것입니다. 엄마가 원하는 가방을 사주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엄마 없이 자라나고도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아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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