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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어제 성시간에는 ‘침묵’에 대해서 간단한 강의를 했습니다.

“여러분, 성시간 중에 죄송합니다만 간단하게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성시간은 침묵 중에 이루어집니다. 헌데 이 침묵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먼저는 귀로 들리는 ‘소리의 침묵’입니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만 해도 거리의 오토바이 소리,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니까요. 그러니 이에 대응하는 한가지 방법이라고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음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생각의 침묵’입니다. 성시간을 하겠다고 앉아 있으면 온갖 생각과 분심거리가 떠오릅니다. 온갖 상상과 과거의 기억이 마구마구 떠올라 정신이 소란스럽습니다. 이 역시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유일한 수단이라고는 다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렇게 주변의 소음들과 내면의 소음들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예수님을 향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마지막 소음이 들려오게 됩니다. 바로 ‘영의 소음’, 즉 양심의 소음입니다. 양심이 괴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양심이 잠잠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 소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음은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이 소음 앞에서 여러분은 뉘우쳐야 하는 것입니다.

영의 소음이 없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성시간을 그대로 즐기면 됩니다. 귀로 들리는 소음에 중요성을 두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에 중요성을 두지 않으면 우리의 영은 그 순간부터 하느님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오늘 이 거룩한 시간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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