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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연애(?)

교리교사를 하는 두 청년이 봉사자 모임을 마치고 저를 찾습니다. 안그래도 전부터 따로따로 상담을 해 오던 녀석들인데 결국 와서 둘이 사귄다고 털어 놓습니다. 물론 다 알고 있었고 그네들도 내가 다 안다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 지금까지 왜 말하지 못했지?

- 겁이 났어요.

- 좋아. 근데 왜 겁이 났을까? 그 이유는 뭘까?

- 학생들 앞에서 이래도 되나 싶어서요.

- 그래. 그럼 한 번 생각해보자. 둘이 사귀는 게 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 …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가 좀 도와주었습니다.

- 두 젊은이가 사귀는 건 나쁜 일이 아니야. 그 나이 때에 할 수 있을 만한 일이지. 하지만 청소년 시기는 뭔가 따라하고 싶은 욕구가 굉장한 나이야. 그래서 교리교사들이 서로 사귀면서 애정 표현을 생각없이 하면 청소년들은 너도나도 그걸 따라하고 싶을거야. 교리교사들도 사귀는데 자기들이라고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니 학생들 앞에서는 조금은 자제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교리교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야. 너희 둘이 사귄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면 다른 교사들도 안달이 날 게 분명하지. 그러니 그 부분을 신중하게 생각하길 바래. 그리고 너(남자친구) 몇 살이지?

- 17살이요. (만 나이입니다.)

- 그래, 그럼 아직 미성년이야, 그렇지? 하지만 너(여자친구)는 성인이지. 그 부분을 조심할 필요가 있어. 너(남자친구)는 아직 사회적으로 온전히 성숙했다고 볼 수 없는 상태이니까 그 점도 조심해서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두 남녀가 사귀다보면 자연히 매력에 끌리는 것도 일반적이니까 그것도 미리 생각을 해 두기를 바래. 그렇게 꾸준히 둘이서 사귀다가 둘 다 나이가 차서 성인이 되면 두 사람의 동의 하에서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겠지만 그 전까지는 아직 한 명이 미성년이니 선을 넘는 행위는 자제할 수 있기를 바래 알겠지? 가능하면 드러내지 말고 둘이서 신중하게 사귀고 가족들에게는 숨기지 않기를 바래.

그러자 남자친구가 말을 합니다.

- 사실 저는 처음 사귀자고 한 날부터 부모님에게 솔직하게 말씀 드렸어요.

- 그래 잘했어. 그럼 좋은 밤 되고 나중에 또 보자.

선교 사제가 그냥 미사만 잘 드리면 될 줄 알았더니 연애상담까지 해야 하네요. 정작 나는 연애도 못하는데.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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