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 우리의 구원 상태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선호도를 보면 되는 것이지요. 주님의 명이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를 바라보면 됩니다. 그것이 부담감이나 거리낌으로 다가오고 심지어는 혐오스럽기까지 하다면 나는 분명 주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분이 명하시는 것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고 한없이 사랑스럽다면 나는 그분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점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내가 백두산 위에 있는 특별한 약초를 얻고 싶은데 걸어올라갈 힘이 지금 당장 모자란다면 천천히 그 힘을 기르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힘이 넘쳐 흘러도 그 약초를 얻으러 갈 마음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의 내면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나의 육신이 약해서 자꾸만 넘어진다면 조금씩 노력해 나가면 됩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이 외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꾸미고 다니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주님의 명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뿐입니다. 헌데 내가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오직 나를 중심으로 나를 위해서 온 세상을 재조정하고 싶을 뿐이라면 그는 하느님 나라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갔다고 상상을 해 봅시다. 그러면 그 순간 나의 내면에 있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더 이상 위선이나 가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의 육신을 지니고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이지요. 거기에서는 우리의 내면에 지닌 것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것을 일순간에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기 까지는 상당한 의지적 선택을 이루어 내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모든 이의 내면을 잘 알고 계십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의 삶이 악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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