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지혜 1,13)
하느님은 절대로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생명의 원동력이며 모든 것을 살리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향한 이들을 다시 당신에게로 돌이키려고 애를 쓰시는 분이시지요.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두려움은 죽음에 속한 이들의 몫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 씀씀이와 말과 행동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잘 자신의 정의를 내세웁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가장 정의롭다는 것을 내세워서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타인을 공격하기가 일쑤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지요. 정의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의는 죽지 않는다. (지혜 1,14-15)
죽음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하느님에게 적대시하는 존재에 의해서 세상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속한 이는 그것을 언젠가는 맛보아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지혜 2,23-24)
죽음에 속한 자들, 죽음의 특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이들, 시기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분열을 일으키고 싸우고 무례하고 참을성이 없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열매를 맞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이 원래 인간을 만든 목적 그대로 ‘불멸’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절대로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생명의 원동력이며 모든 것을 살리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향한 이들을 다시 당신에게로 돌이키려고 애를 쓰시는 분이시지요.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두려움은 죽음에 속한 이들의 몫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 씀씀이와 말과 행동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잘 자신의 정의를 내세웁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가장 정의롭다는 것을 내세워서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타인을 공격하기가 일쑤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지요. 정의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의는 죽지 않는다. (지혜 1,14-15)
죽음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하느님에게 적대시하는 존재에 의해서 세상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속한 이는 그것을 언젠가는 맛보아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지혜 2,23-24)
죽음에 속한 자들, 죽음의 특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이들, 시기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분열을 일으키고 싸우고 무례하고 참을성이 없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열매를 맞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이 원래 인간을 만든 목적 그대로 ‘불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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