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마태 7,23)
아주 간단한 내용입니다. 불법을 저지르는 이는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못합니다. 그럼 무엇이 불법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주일미사도 잘 지키고, 교무금도 잘 내고, 판공도 빼먹은 적 없고, 금육도 잘 지키는데 과연 무엇이 불법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법’에 대한 이해를 올바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법인지 모르고 있지요. 법은 문자로 적힌 그 내용들이 법이 아닙니다. 참된 법은 한 마디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뜻에 합당한 모든 것이 ‘법’이 되고, 반대로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것은 ‘불법’이 됩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이해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과연 누구입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당신을 열어 보이시지 않는 이상 우리가 그분을 찾는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 두 팔을 휘젖는 것과 마찬가지 행동이 됩니다. 그분은 너무나 크시고 영원하신 분이라 인간의 하찮은 이성이 감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고 그분의 뜻을 알 수 없는 존재들인가요? 천만에요. 하느님은 이런 우리의 어려움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직접 스스로를 드러내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 안에 등장한 인물이지요. 당신의 외아들이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을 찾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전한 하느님의 뜻은 단 두 가지 뿐입니다.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기, 그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이 두 가지입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게 밝혀졌습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느님의 뜻을 채운다는 것은 하느님과 이웃을 많이 사랑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부부가 주일 미사에 나갔다가 집에 와서 사소한 일로 다투기 시작한다면 그 부부는 전혀 주일을 거룩히 보낸 것이 아닙니다. 금육을 지킨다고 더 값비싼 회를 먹으러 다니면서 정작 가난한 이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면 그는 금육의 참된 의미인 사랑을 전혀 이행하지 않는 것이지요. 때가 되면 판공은 잘 지키면서 정작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나서는 이는 고해성사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주님, 주님’ 하면서 자신이 지상에서 행한 모든 공허한 선행을 드러내며 외쳐댈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에 주님은 단호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아주 간단한 내용입니다. 불법을 저지르는 이는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못합니다. 그럼 무엇이 불법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주일미사도 잘 지키고, 교무금도 잘 내고, 판공도 빼먹은 적 없고, 금육도 잘 지키는데 과연 무엇이 불법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법’에 대한 이해를 올바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법인지 모르고 있지요. 법은 문자로 적힌 그 내용들이 법이 아닙니다. 참된 법은 한 마디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뜻에 합당한 모든 것이 ‘법’이 되고, 반대로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것은 ‘불법’이 됩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이해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과연 누구입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당신을 열어 보이시지 않는 이상 우리가 그분을 찾는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 두 팔을 휘젖는 것과 마찬가지 행동이 됩니다. 그분은 너무나 크시고 영원하신 분이라 인간의 하찮은 이성이 감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고 그분의 뜻을 알 수 없는 존재들인가요? 천만에요. 하느님은 이런 우리의 어려움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직접 스스로를 드러내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 안에 등장한 인물이지요. 당신의 외아들이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을 찾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전한 하느님의 뜻은 단 두 가지 뿐입니다.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기, 그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이 두 가지입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게 밝혀졌습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느님의 뜻을 채운다는 것은 하느님과 이웃을 많이 사랑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부부가 주일 미사에 나갔다가 집에 와서 사소한 일로 다투기 시작한다면 그 부부는 전혀 주일을 거룩히 보낸 것이 아닙니다. 금육을 지킨다고 더 값비싼 회를 먹으러 다니면서 정작 가난한 이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면 그는 금육의 참된 의미인 사랑을 전혀 이행하지 않는 것이지요. 때가 되면 판공은 잘 지키면서 정작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나서는 이는 고해성사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주님, 주님’ 하면서 자신이 지상에서 행한 모든 공허한 선행을 드러내며 외쳐댈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에 주님은 단호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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