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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스승과의 대화(픽션입니다.)




- 주님, 제가 하느님을 알게 해 주십시오.
-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당신은 이스라엘의 스승이 아니요? 지금까지 당신이 습득한 거룩한 지식과 당신의 주변으로 당신이 실천한 모든 행위들 안에서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하느님을 찾아 알겠다는 겁니까?
- 주님, 그래도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 불쌍한 영혼. 당신은 스스로 당신의 오류를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소. 하느님은 그동안 당신에게 좋은 분이셨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지요. 헌데 그 모든 손길 속에서도 하느님을 알지 못하겠다고 하고 이제 와서 하느님을 알고 싶다고 하니 당신에게 그 어떤 은총이 더 드러날 수 있을지 저로서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 작은 표지 하나만이라도 부탁합니다. 주님.
- 표지라고? 기적을 말하는 거요? 당신은 크게 오해하고 있소. 기적은 하느님이 당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애써 드러내시는 것이 아니오. 하느님은 당신을 이미 드러내셨고 거기에는 부족함이 없소. 문제는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거지요. 기적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드러내는 사랑의 표지일 뿐이오.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일상이 기적이오. 하지만 당신은 이미 당신에게 드러나고 있는 기적을 감지할 능력이 없을 뿐이지요. 그러나 생각해보시오. 지금 당신이 시력을 잃고 나면 그때는 이미 지니고 있던 시력에 대해서 감사하게 될 것이오. 당신의 손가락이 오그라들고나면 그때에야 비로소 당신은 당신의 육체가 뜻대로 움직여 준 것이 하느님의 선하신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그러나 보시오. 장님들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소, 병자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소. 그러는 동안 육신이 성한 당신은 하느님을 찾을 표지를 달라고 하니 이 얼마나 모순된 일이오? 표지는 없소. 당신이 볼 수 있는 유일한 표지는 당신 앞에 서 있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나일 뿐이오.

이스라엘의 스승은 한편으로 실망스럽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 수치스럽기도 하고 해서 음침한 얼굴을 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일어나 갈 길을 재촉하기 시작하셨다.

- 아직도 나에게는 할 일이 많다.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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