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 21,31-32)
상처가 크게 나면 우리는 그 상처를 알아보고 조치를 강구합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그걸 내버려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행여 상처가 너무나도 크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움직일 기력이 없을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누구라도 크게 다치면 일단 도움을 구하고 치유 받고자 애를 씁니다.
하지만 우리가 안으로부터 서서히 곪아 들어간다면, 그리고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우리로서는 그것을 진단할 방법이 없고 내버려두게 됩니다. 그러면 안으로부터 커지는 그 무언가는 결국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수준까지 이르게 되고 결국 그는 죽어버리고 맙니다.
세리와 창녀들은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의 부름을 들을 때에 마음 아파하고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적 상처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모르는 이들, 즉 영적으로 교만한 이들은 그런 회개에로의 초대와 가르침을 우습게 여기고 맙니다. 자기 스스로는 아무런 것도 잘못된 것이 없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일 미사 빠지지 않는다고, 판공 거른 적 없다고, 교무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성인 취급합니다. 미사 직전에 성급하게 고해성사에 들어와서도 지난 주일 미사 빠진 것이나 털어 놓을 줄 알지, 사실 진지하게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본 적은 거의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고질병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고 결국에는 그를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묵시 3,15-17)
소위 교회의 영적 ‘중산층’들은 이런 무감각함, 무기력함, 영적 미온성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훗날 우리가 우리 발바닥 아래에 있다고 생각했던 죄인들이 먼저 회개에 이르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치고 이를 갈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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