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관용, 온유… 저에게 다가오는 시험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합당한 시련을 허력하셨고 위의 세가지는 각각의 시련에 상응하는 덕목들입니다. 인내는 갑작스런 반응을 조절하게 도와주고, 관용은 너그러니 용서하는 마음을 키워주어 상대가 다가오게 하고 온유는 그렇게 다가온 이를 부드럽게 다루려는 시도를 말합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요. 아마도 예전의 저였다면 태어난 날을 저주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조금 마음이 쓰일 뿐입니다. 제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체험들은 저에게는 은총의 시간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원하는 도구를 늘 ‘디자인’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칼이면 더 날카롭도록 다듬으시고 망치면 더욱 강한 힘으로 내리누르도록 하시며, 무엇을 담는 그릇이면 더 많은 것이 담기도록 하시지요. 그러나 그러한 도구들은 모두 다 처음에는 볼품 없는 것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냥 나뭇조각, 돌조각, 쇳조각에 불과한 것들이었지요. 하느님은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그것을 다듬으시는 것입니다. 재료들의 고통은 상당했겠지요. 어떤 재료들은 자신이 깎이는 느낌이었을 것이고, 또다른 재료들은 자신들의 변형을 느꼈을 것입니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거지요.
그러나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었고 그 도구들이 완성되었을 때에 하느님은 그것을 들고 작업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도구들의 모양새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물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누가 망치와 정과 대리석으로 그렇게나 멋들어진 조형물을 만들 수 있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누군가 하느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하면 하느님은 그 순간부터 그를 다듬으시기 시작하십니다. 그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위대한 기술자이시며 영혼의 조각가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요. 하느님이 우리를 어디까지 끌고 가시려 하시는지 우리로서는 짐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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