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요한 1,9-11)
어두컴컴한 곳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면 사물들이 제대로 보이게 됩니다. 김에 서린 안경을 끼고 있다가 그것을 닦아 내도 같은 체험을 합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이 흐려져 있다가 빛을 받아들이거나 그 빛을 받아들일 눈을 맑게 해서 사물들을 뚜렷하고 명백하게 구분해 낼 수 있게 됩니다.
때로 잘 정돈되고 내용이 좋은 글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납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이 정신적인 차원의 빛으로 조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또 아침에 일어나 멍한 정신일 때에 커피를 한 잔 하거나 잠을 깨는 행동을 해도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납니다.
이처럼 빛을 받아들이거나, 이미 존재하는 빛을 잘 받아들이도록 스스로를 준비할 때에 우리는 우리 안에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의 과정은 우리의 영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위의 성경 구절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빛이 오셔서 우리의 영혼을 맑게 가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영혼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그 빛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외적인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사도 외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잘생기고 싶어하고, 건강하고 싶어하고, 적은 노력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고 기왕이면 인기가 있고 권력도 쥐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을 아주 가까이 지나가는 가장 소중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영원과 손을 맞잡은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라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그러나 그 빛을 바라볼 눈이 없어서 그분은 빛으로 취급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로 성가심이요 거북함으로 취급을 당하십니다. 빛이신 분이 당신의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처참히 무시하고서는 ‘도대체 그분이 어디에 있는가?’하고 묻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찾으려고 묻는 게 아니라 찾으면 조롱하기 위해서 그렇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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