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정한 시기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직장에 충실할 때이고 지금은 주식에 투자할 때이며 지금은 노후를 보장해야 하는 시기이다 등등의 기한들을 정해놓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우리가 언제 신앙의 시기를 따로 정해놓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스스로 답변해 보십시오. 신앙의 시기가 인간의 사고 속에 자리잡을 때가 있습니까? 그걸 보편화 시킬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음 기회'라는 시기를 신앙의 시기로 삼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언제나 미뤄둔 '다음 기회'가 오기 전에 주님이 불쑥 찾아오셔서 열매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부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무화과 철도 아닌 시기에 무화과 나무에 열매를 요구하셨고 또 그것을 저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화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은 부당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은 성질난 어린애처럼 보입니다. 성경은 무화과 나무 이야기 사이에 교묘하게 성전 정화 사건을 밀어넣어 놓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상인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고 팔고 하느라 정신이 없어 하느님의 말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보니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당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열매를 요구받을 시기는 우리가 정한 철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둑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처럼 불쑥 다가오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늘 깨어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만 무화과나무라는 도구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신 것 뿐입니다.
솔직히 저는 오늘의 복음에서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자신의 신앙의 결과지를 언제 요구받을지 모르는 채 우리는 언제나 신앙의 시기를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금의 인간적 사업들에 골몰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와서 열매를 요구하는 데에도 내어놓을 열매 하나 마련해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으니 이제 열매 맺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그 나무는 뿌리째 말라 버릴 것입니다.
저는 성경 말씀이 그대로 우리 삶을 반영해 낸다고 보고 있습니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영혼들이 성전에 모여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성전에서는 기도에 마음써야 하고 사제와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하느님을 배워 나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전이라는 거룩한 공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탐욕스런 내면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사제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세상 일에만 골몰합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처럼 그들은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성전, 그런 종류의 성당, 즉 주님께서 열매를 요구하실 때에 내어놓을 열매가 없는 이들은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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