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이상 그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쓰고 소비하면서 살게 마련입니다. 하다못해 어디를 가려고 해도 차비가 들게 마련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쓰지 않고 사는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입에 뭐라도 넣어야 그걸 양분으로 삼아 살아가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필요한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이 움직이면 음식이 필요하고 옷을 입으면 세탁이 필요하고 집에서 살면 청소가 필요합니다. 사실 이는 제가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초전에 와서 사는 동안 저는 일상적으로 이 일들을 처리해 왔고 이것이 신자분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대접하겠다고 나서거나 무언가를 돕겠다고 나서지 않는 이상 무엇을 해 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습니다. 심지어 아플 때에도 제가 직접 운전해서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오로 사도의 이 표현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높이려고 나 자신을 낮추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대가 없이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다고 해서,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사실 제가 하는 일에 합당한 감사의 표현과 저의 삶에 대한 염려는 정작 본당보다 외부에서 더 많이 받았습니다. 수많은 분들이 저의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하다하다 어떤 분은 제가 먹고 싶어하는 열대과일까지 챙겨 보내 준 적도 있습니다. 사람은 원래 받은 만큼 감사를 표현하게 마련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자신이 받은 복음의 효과를 말씀해 주셨고 저는 그 일이 실제로 그분들에게 일어났음을 알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은 그 복음이 나의 현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 안에서 실현되지 않는 것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복음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수난을 말하면 수난 당해야 하고 부활의 영광을 말하면 그것을 진실로 희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언자의 숙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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