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독서를 묵상하면서 저도 제 어리석은 자랑거리를 모아 보았습니다.
코린토 2서 11장 18절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누가 감히 자랑한다면, 어리석음에 빠진 자로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저는 학창시절 반에서 1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대구 수성구 성 김대건 성당에서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저는 신학교 전례부, 과거 명칭으로 성무부 출신입니다. 신학교 전례는 FM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신학교 시절 검도부, ‘말’ 문학 동아리, 만화부, 전산부, 나환우를 돕는 릴리회에 소속되어 활동했습니다.
가톨릭 스카우트 상급 과정을 무사히 수료하였고 지도자 자격증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부제반때 꾸르실료 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저는 현재 제2 주교좌 성당인 범어성당의 보좌였습니다.
저는 많은 사제들이 공통적으로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어느 주임 신부님 밑에서 보좌를 했습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8년을 머물렀습니다. 선교지에서도 2개 본당에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지를 나오면서 제발 이 사제를 다시 선교지로 돌려 보내 달라는 선교지 현지 사람들의 사인이 가득 든 편지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저는 ME 교육을 deeper 과정까지 수료했습니다.
학생 주보 새하늘 새 땅에 교리 만화를 연재하였고 미주판 가톨릭 신문에 만화를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한겨레 신문에도 제 만화가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현재에도 사목정보지에 꾸준히 만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최초(아마 세계 최초?)로 만화책을 발매한 가톨릭 사제입니다. 그것도 2005년도에 SEMITOON 한 권(홍익포럼 출판사, 현재 절판), 2021년에 PRIESTOON 한 권(독립출판)씩 해서 총 두 권을 내었습니다.
저는 포근한 가정 교리서(벽난로 출판사)라는 교리책을 만들었고 교회의 인준을 받았습니다.
저는 겸손기도 신부와 먼지 아빠 이야기라는 공저책(벽난로 출판사)과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있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집(벽난로 출판사)도 내었습니다.
대구대교구 빛잡지에 3년간 선교지의 글을 연재했습니다.
대구 평화방송 무료 신앙 특강에서 총 39회 강의를 진행했고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걸로 보입니다.
저는 평화방송에서 ‘와서 보시오’라는 제목으로 요한 복음 특강을 40회 진행했습니다.
전국 각지를 돌면서 특강을 했고 그 횟수가 100회를 넘었습니다.
미국 LA와 뉴욕에 초청을 받아 성령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저는 사수 성당의 초대 주임 사제이며 현재의 사수성당을 단 1년만에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도 어느 본당에도 손을 벌리러 간 적이 없습니다.
저는 주교님이 계시는 대구교구청에서 가정 복음화국 차장으로 일하였습니다.
저는 포항의 4대리구청에서 5개 본당(경주 성동, 포항 장성, 효자, 지곡, 죽도)에 성경 강의를 주도했습니다. 그 와중에 성령 기도회 지도 신부를 맡았고 지곡 성당 주임 신부까지 역임했습니다.
저는 세계 각지를 다녔습니다. 남미 볼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동남아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아시아의 일본과 중국,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스페인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오스트레일리아, 이스라엘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은 총 5번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볼리비아에서 4인조 택시 강도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또 개미에게 물려 정신을 잃은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급성 간염에 걸려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쓸개에 돌이 차서 선교 생활을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대상 포진을 두 번이나 앓았고 최근에는 코로나까지 섭렵했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나도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코린토 2서 11장 28-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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