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에 대해서 올바른 관념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계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전능함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유한성을 지닌 존재가 어떻게 무한성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없고 인간은 하느님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올바르게 받게 된 사람은 거룩한 영 안에서 하느님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하느님은 구름에 싸여 있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한계성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우리가 태양을 바로 바라보면 우리의 눈이타들어가는 듯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하느님을 바로 보게 되면 그 전능성과 영광에 압도될 것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서 당신을 가리워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당신을 이렇게 선포 하십니다.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자비, 너그러움, 분노에 더딤
이 세 가지는 우리의 어둠과 관련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 또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며 분노에 더딘 분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롭지 않다면 우리에게 용서란 없을 것이고, 너그럽지 않다면 우리는 철두철미하게 계산된 용서를 받을 것이고 분노에 더디지않으시면 우리는 죄를 짓자 마자 죽음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세상은 이런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자는 죽어야 마땅하다고 하고, 또 모든 죄들은 샅샅이 밝혀져서 낱낱이 심판받아야 한다고 하고, 나아가 죄를 인지하는 즉시 그것을 되갚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그렇지 않습니다.
자애(인자)
하느님은 사랑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빛을 향해서 나아오려고 노력하는 가련한 영혼들을 기꺼이 당신의 사랑으로 감싸 끌어안아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마치 돌아오는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처럼 언제나 창가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멀리서 아들이 오는 걸 보면 달려나가 얼싸안아 주시고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렇게 충만합니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기뻐 뛰 놀 수 있습니다.
진실(성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여정 중에 시련이 닥치더라도 하느님의 신실함에 기댈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루겠다고 약속하신 일을 반드시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하느님을 올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주일미사나 빠지면벌이나 주는 무서운 교장 선생님 같은 하느님의 이미지 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당신을 드러내는 그분의 올바른 모습을 거룩한 영으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기꺼이 목이 뻣뻣한 백성을 데리고 당신의 여정을 걸어갈 결심을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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