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인간 가운데에서 ‘초월성’에 가 닿지 못하고 현세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을 동물에 비유합니다. 특히나 오늘 복음은 ‘개와 돼지’를 통해서 그들을 묘사합니다.
거룩한 것이 거룩한 것이 되는 것은 오직 초자연적인 법칙에 의해서입니다. 미사를 드리는 곳을 아무리 살펴봐도 ‘거룩함’이라고 할 만한 현세적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함은 인간 안에 내재된 신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제라도 그 사제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사제를 존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사제가 여기 저기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앙의 감각이 그에대한 시선을 서로 달리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의 사제직의 존귀함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감각이 없는 사람을 성경은 ‘개와 돼지’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거룩한 것, 우리의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합니다.
만일 세상에서 돈 버는 기술과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 사람들은 혈안이 되어 그것을 배우려고 들 것입니다. 그들의 내면이 돈에 대한 탐욕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거룩한 이들에게 있어 영적인 보살핌과사랑은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그 가치를 이해하는 이들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전해질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심지어 그 가치를 모르는 이들은 그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을 물어 뜯으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침이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이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고 구원을 선물하고자 했지만 당대의 지도자들에게 그분의 가르침은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죽어야 하는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신앙의 자리에 나아오지 않습니다. 신앙의 요소에 목말라하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가르침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상대의 꼬투리를 잡고 물어 뜯을 생각으로 나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비난하고 욕하는 것이 쉬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 길은 멸망으로가 닿는 길이고 널찍한 길이며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반면 생명으로 이끄는 길은 너무나도 좁아서 좀처럼 그리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거룩함을 모르는 개 돼지가 되지 않도록 합시다. 오히려 거룩함에 맛들이고 시련 가운데에서도 참된 의미를찾아 나가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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