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서 ‘나쁜 말’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나쁜 말일까요? 이런 상상을 해 보면 어떨까요? 자매님들이 모여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한 자매가 최근 자신에게 일어난 좋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함께 기쁨을 나누고 축하받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헌데 옆에서 듣고 있던 나이 지긋한 자매가 아주 부드러운 말로 이야기합니다.
”아유~ 데레사 자매는 참 좋겠어. 그런 일도 있고 말야. 근데 지난 번에 있었던 사건은 다 해결된거야? 지금 기뻐할 때가 아니지 않아?“
부드러운 표현을 썼지만 실상 이 자매의 내면은 시기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외적으로 부드러운 말을 사용했더라도 그것은 ‘나쁜 말’이 됩니다. 또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입이 아주 걸죽한 욕쟁이 할머니 집에 꾀죄죄한 한 중년 남성이 들어갑니다. 할머니는 그가 들어서는 걸 보며 욕을 시작합니다.
”야이 썩을 놈, 어디 가서 죽지 뭐하러 온겨? 밥은 처먹고 다니냐?“
그러면서 얼른 국밥을 한 그릇 말아줍니다. 돈도 받지 않습니다. 이 할머니의 말의 외견은 상당히 험악하지만 실제로 그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그 아저씨를 걱정합니다. 이 말은 거친 말이지만 나쁜 말은 아닌 셈입니다.
남미에서 선교를 하면서 거친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또 한국에서 성모 울타리라는 곳에서도 거친 분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교양이 부족하고 입이 험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서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반대로 외견은 깔끔하고 교육 수준도 높지만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음흉하고 사악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외적으로는 교묘하게 가리고 다닙니다. 그들은 위선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 버리십시오.”
사실 모든 것 안에 내재되어 있는 마음의 근간을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악한 의도가 있는 사람은 그 의도를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실현하게 됩니다. 마치 속에 더러운 구정물을 품고 있으면 병이 아무리 화려하고 예뻐도 그 썩은 내가 스멀스멀 새어나오게 마련입니다. 반대로 향수를 담고 있으면 병이 아무리 못나도 향기가 나게 마련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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