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영적인 면'에 대한 감각을 의미합니다. 영혼이 없으면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활동이라는 껍데기만 남을 뿐입니다.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흔히 무시 당하는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오히려 세상보다 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영혼입니다.
우리는 왜 영혼들을 위해서 미사 지향을 넣는 것일까요?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이들이 공중분해 된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생생히 살아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떠올리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그들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는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입니다.
사실 미사를 포함한 성사라는 것 자체가 어떤 연극이나 가식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모든 성사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제의 인격을 통해서 신자들과 직접적인 만남을 이루십니다. 특히나 미사 안에서 예수님은 성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십니다. 이는 신앙이 없이는,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흔히 '인연의 끈'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머나먼 지역에 머무는 두 사람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이 있어 하나로 엮여 있고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토빗기가 그러합니다. 토빗이라는 인물과 사라라는 인물은 하느님 안에서 같은 색깔을 지닌 영혼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토빗의 아들 토비야와 사라를 인연으로 엮어 주시고 둘에게 의인으로서 고통받는 두 인물에게 위로를 선물해 주십니다.
의로운 이들은 서로의 내면에 긴밀한 끈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힘든 역경이 있어도 상관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의 긴밀한 친교 안에 머무르게 된다면 우리는 하느님과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댓글